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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틴 라이브스 (전문성, 책임감, 연대)

by viewpointlife 2026. 4. 10.

서틴 라이브스 포스터
영화 '서틴 라이브스'

위기가 닥쳤을 때, 당신 주변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까? 화려한 언변으로 브리핑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아니면 말없이 진흙탕 속으로 먼저 뛰어드는 사람이었습니까.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며 그 차이를 뼈저리게 경험했고, 그래서 영화 서틴 라이브스(Thirteen Lives)를 보는 내내 가슴이 서늘하게 무너졌습니다.

전문성: 훈련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2018년 태국 치앙라이, 탐 루앙 동굴(Tham Luang Cave)에 유소년 축구팀 13명이 갇혔습니다. 탐 루앙 동굴은 총길이 10킬로미터가 넘는 복잡한 수중 동굴 구조로, 우기에는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는 곳입니다. 태국 해군 특수부대조차 진입을 포기한 이 동굴 안으로, 영국의 베테랑 케이브 다이버(Cave Diver)들이 자비를 들여 날아왔습니다. 여기서 케이브 다이빙이란 일반 스쿠버 다이빙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술로,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는 밀폐된 수중 공간을 가이드라인(Guideline)에만 의지해 탐색하는 고난도 잠수 기술을 말합니다.

영화 속에서 릭과 존이 동굴 안쪽에서 살아있는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 저는 그들이 환호할 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환호하지 않았습니다. 돌아갈 산소량을 계산하고, 가이드라인 상태를 점검하고, 가장 안전한 복귀 경로를 냉정하게 따졌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진짜 전문가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통제하는 훈련이 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구조 과정에서 팀은 전신 마취(General Anesthesia)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합니다. 전신 마취란 의식과 통증 감각을 완전히 차단하는 의료적 처치로, 장비 없이는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좁고 어두운 수중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아이가 패닉(Panic) 상태에 빠지면 모두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의사이자 잠수부인 해리가 이 방법을 제안한 것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이 결정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전제로 한 전문적 판단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책임감: "잘못되면 누가 책임집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위기 상황에서 이 질문이 가장 먼저 튀어나옵니다. "이게 실패하면 누가 책임져요?" 저도 그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고, 반대로 그 질문을 들으며 맥이 빠진 적도 있습니다. 영화 속 해리와 동료들은 그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마취 중 사망하면 살인 혐의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그 책임을 온전히 자신들의 어깨에 짊어지고 출발 버튼을 눌렀습니다.

구조 작전의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가이드라인(Guideline) 확보: 수중에서 복귀 경로를 잃지 않도록 로프를 고정하고 탐색하는 원칙
  • 산소 탱크(Oxygen Tank) 사전 배치: 구간마다 예비 공기통을 미리 설치해 구조 도중 산소 부족 위험을 줄이는 방식
  • 마취 투약 타이밍 관리: 아이가 좁은 구간을 통과하는 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도록 투약 간격을 정밀하게 조율하는 절차

저는 이 세 가지 원칙이 단순히 잠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실패 가능성을 미리 설계하고 그 실패에 대한 책임까지 사전에 계획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 Management)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리스크 매니지먼트란 위기 발생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고,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 체계를 설계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합니다. 기업 경영에서도, 가정에서도, 이 개념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40대 아빠로서 제가 이 장면에서 받은 충격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었습니다. 두 딸아이가 언젠가 캄캄한 동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저는 밖에서 응원만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차가운 물속으로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 질문이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2018년 태국 동굴 구조 작전은 18일간 진행되었으며, 총 13명 전원이 생존하여 구출되었습니다. 이 작전에는 10개국 이상의 전문 인력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출처: BBC News).

연대: 세상을 구한 것은 한 명의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론 하워드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카메라를 영웅 한 명에게만 고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산 위에서 쏟아지는 빗물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논밭을 기꺼이 내어준 현지 농부들, 무료로 음식을 해다 나른 이름 없는 자원봉사자들, 동굴 내부의 물을 빼내기 위해 설계를 거듭한 수자원 엔지니어들. 영화는 이 모두에게 동일한 무게의 조명을 비춥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는 한 명의 슈퍼히어로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구조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서틴 라이브스는 그 공식을 거부합니다. 농부의 주름진 얼굴을 보는 순간, 저는 제가 밖에서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내어준 아내와, 묵묵히 허드렛일을 도맡아 준 직장 동료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저의 어떤 성과도 없었다는 사실을,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집단적 문제 해결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집합적 효능감(Collective Efficacy)이라고 부릅니다. 집합적 효능감이란 집단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행동할 수 있다는 공유된 믿음을 뜻하며, 이 믿음이 강할수록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태국 동굴 구조 작전은 그 이론의 가장 극적인 실증 사례였습니다.

13명의 아이들이 모두 구출된 뒤, 영국 잠수부들은 기자들의 마이크를 피해 조용히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훈장도 없었고, 기자회견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진짜 어른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서틴 라이브스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 당장 보시길 권합니다.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라, 위기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묻는 영화입니다. 보고 나서 주변에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는 사람을 한 명만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 그게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MePLNy6d7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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