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만을 강요하는 교육이 과연 아이들을 성장시킬까요?" 3월 25일 개봉하는 영화 <열여덟 청춘>은 이 질문에 대해 획일화된 입시 교육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답합니다. 전소민과 김도연이 각각 파격적인 담임교사 희주와 스와힐리어를 공부하는 18살 순정으로 만나 빚어내는 이 작품은, 규칙보다 개인의 다름을 먼저 보는 교육 철학을 통해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되묻습니다. 저는 사춘기 두 딸아이의 닫힌 방문 앞을 서성이며 이 영화를 보았고, 20대 군 복무 시절 배웠던 다양성의 가치를 정작 제 자녀에게는 적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획일화된 시스템 속 다양성의 가치
희주 선생님이 보여주는 교육 방식은 기존 한국 교육 시스템의 통제 중심 접근법(Control-based Approach)과 정반대입니다. 여기서 통제 중심 접근법이란 학생들의 행동을 규칙과 감시로 관리하여 일정한 틀 안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전통적 교육 방식을 의미합니다. 희주는 휴대폰 회수를 거부하고, 반장을 돌아가며 맡기며, 심지어 수능 준비 대신 스와힐리어를 공부하는 순정의 선택조차 억압하지 않습니다.
2023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고등학생의 72.3%가 '학교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어렵다'라고 응답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이러한 통계는 우리 교육 현장이 얼마나 획일성에 집중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저 역시 군대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배경의 동료들과 생활하며 깨달았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우리를 구한 것은 일률적 명령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지점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순정이 아프리카행을 꿈꾸며 스와힐리어를 공부하는 모습은 기성세대에게는 시간 낭비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 대비 수익률) 중심의 교육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청소년기의 본질적 욕구입니다. 여기서 ROI 중심 교육관이란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수능 점수나 취업 같은 가시적 성과로 직결되어야 한다는 효율성 위주의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희주가 아이들에게 실시한 '카드 선택' 수업은 자기 인식(Self-awareness) 교육의 훌륭한 예시입니다. 가족, 친구, 멘토, 자신 중 가장 소중한 것을 고르게 하는 이 활동에서, 순정은 자신보다 엄마와 할머니를 우선적으로 택합니다. 이는 관계 의존적 자아 개념(Relational Self-concept)의 전형입니다. 쉽게 말해 자신의 가치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찾으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영화는 이런 순정이 점차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사춘기 자녀와의 소통, 통제가 아닌 신뢰로
40대 가장으로서 저는 최근 두 딸아이가 방문을 닫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당황스러웠습니다. 제 계획과 통제 안에 있던 아이들이 낯선 인격체로 변해가는 과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배웠던 다양성 존중을 정작 제 자녀에게는 적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024년 보건복지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우울감 경험률은 28.4%로, 10명 중 3명이 우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이 수치가 높은 이유 중 하나는 부모와의 소통 부재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자신의 틀에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순정의 엄마는 극단적인 노답 부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술과 남자에 의존하며 딸에게 무관심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휘두르죠. 이런 환경 속에서 순정은 세상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반면 희주는 순정의 야자 빠짐을 추궁하는 대신, 체육대회 우승이라는 목표를 제시하며 순정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자율성 지원 교육 모델(Autonomy-supportive Educational Model)입니다. 여기서 자율성 지원이란 학생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기회를 주되, 그 과정에서 적절한 가이드와 지지를 제공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솔직히 저도 아이들에게 "공부해라"라는 말만 반복했지, 아이들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희주처럼 아이들의 엉뚱한 꿈을 억누르지 않고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라는 걸 이 영화를 통해 배웠습니다.
영화는 또한 또래 집단 내 존재감 제로인 학생의 성장도 다룹니다. 체육대회 결승에서 마지막 한 명으로 남아 반을 승리로 이끈 '나엘리'처럼, 누구나 자신만의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희주는 이 학생에게 "나엘리, 오늘 잘했어"라며 이름을 불러주고 인정해 줍니다. 이런 작은 관심과 인정이 청소년기 자아 존중감(Self-esteem)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열여덟 청춘>이 제시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통제가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 형성
- 획일화된 정답 대신 개인의 다양성 존중
- 자율성과 책임감을 동시에 키우는 교육
- 타인의 인정보다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세
제 두 딸아이는 제 복제품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지금 자신만의 '스와힐리어'를 배우며, 저와는 완전히 다른 자신들만의 우주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아이들의 닫힌 방문을 억지로 열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희주 선생님처럼 아이들이 각자의 속도대로 찬란한 청춘을 피워낼 수 있도록, 언제나 가장 유쾌하고 든든한 지지자로 남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사춘기 자녀를 둔 3040 부모님들, 그리고 직장이나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어른들에게 진심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