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영화 한 편이 그 불편한 진실을 거울처럼 들이밀기 전까지는요. 영화 '더 해머'는 선천적 청각장애를 가진 맷이 레슬링 챔피언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제가 거기서 건져 올린 것은 스포츠 감동이 아니라 40대 아버지로서의 뼈아픈 오답 노트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교정 본능
맷의 할아버지는 손자가 비장애인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에 수어(手語) 사용을 전면 금지합니다. 수어란 청각장애인이 손동작과 표정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시각 언어 체계로, 농인(聾人) 공동체의 모국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바로 그 모국어를 빼앗고, 대신 독순술(讀脣術)과 구화법(口話法)을 강요합니다. 독순술이란 상대방의 입 모양을 눈으로 읽어 말을 파악하는 기술이고, 구화법은 청각 정보 없이 발성을 훈련하여 말소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입니다. 듣지 못하는 아이에게 듣는 척을 가르치는 셈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이 장면이 처음에는 그냥 '엄격한 할아버지 이야기'로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제 거실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저도 똑같이 하고 있었거든요.
제 둘째 딸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유독 내성적이었습니다. 낯선 사람 앞에서는 입을 꾹 닫고,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다니기보다 구석에서 조용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이 성향을 아이의 개성으로 읽지 못하고, 고쳐야 할 결함으로 규정했습니다. 태권도장과 웅변학원에 억지로 밀어 넣고, "남들처럼 먼저 다가가서 큰 소리로 말해야지!"라고 닦달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불안의 투사였습니다.
한국 아동발달 연구에 따르면 기질(temperament), 즉 타고난 행동 성향은 생후 수개월 내에 이미 안정적으로 드러나며 환경보다 유전적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아동학회). 쉽게 말해 내성적인 기질은 훈련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습관이 아니라 아이의 뇌와 신경계에 새겨진 특성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모르고 저는 아이를 외부 자극에 억지로 노출시키는 강화 훈련을 반복했던 겁니다.
소리 없는 세계가 주는 감각의 역설
영화가 특히 탁월한 지점은 사운드 디자인에 있습니다. 감독은 결정적인 레슬링 경기 장면에서 모든 음향을 소거하고 이명(耳鳴) 수준의 기계음만 남겨 둡니다. 이명이란 외부 소리 자극 없이 귀나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리는 현상으로, 청각장애인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청각 환경을 시뮬레이션한 것입니다. 관객은 맷이 겪는 완벽한 단절의 공포를 피부로 체험하게 되고,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그의 고독 자체에 동화됩니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반전을 보여줍니다. 맷이 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코치의 지시를 입술로 읽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맷은 매트의 진동, 상대의 무게 이동, 근육의 긴장감 같은 고유수용감각(固有受容感覺)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고유수용감각이란 관절, 근육, 건에 분포한 수용체가 신체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감각 체계로, 시각이나 청각과는 별개로 작동합니다. 비장애인 선수들이 코치 소리에 주의를 분산시키는 동안, 맷은 오직 몸으로만 상대를 읽을 수 있었던 겁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가장 큰 울림을 줬습니다. 결핍이 무기가 된다는 논리는 그냥 위로성 문구가 아니라, 영화 안에서 실제 경기 흐름으로 증명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제 딸아이가 가진 '느린 속도'와 '조용한 성향'이 어떤 감각을 키우고 있는지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수어를 빼앗긴 아이들, 정체성을 잃은 아이들
맷이 비장애인 대학에서 극심한 소외감을 겪다가 농인 대학교(RIT)로 편입해 처음으로 수어를 배우는 장면은 영화의 정서적 정점입니다. RIT는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 위치한 로체스터공과대학교로, 세계 최대 규모의 농인 고등교육 기관 중 하나인 NTID(국립농기술연구소)를 캠퍼스 내에 두고 있습니다(출처: 로체스터공과대학교). 맷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고, 수어로 웃으며 소통하는 장면에서 저는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진짜 강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비장애인처럼 말하는 법을 익혔을 때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와 정체성을 온전히 긍정했을 때 맷은 비로소 무적이 됩니다.
저는 딸아이에게 무엇을 빼앗고 있었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웅변학원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연습을 시키는 동안, 아이는 혼자서 그림 속 요정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 세계는 아이만의 수어였는데, 저는 그것을 빨리 없애야 할 결함으로만 봤던 겁니다.
영화가 고발하는 핵심 문제는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 비장애인 중심주의(청각구화주의)가 농인 당사자의 정체성을 어떻게 억압하는가
- 사랑을 명목으로 한 교정이 당사자에게 어떤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을 남기는가
- 자아수용(self-acceptance)이 없는 강함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
이 구조는 스포츠 영화의 외피를 빌렸지만, 사실 모든 부모와 리더가 한 번쯤은 자신을 대입해 봐야 할 관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가 건너가야 할 세계
그날 밤 저는 아이의 책상 옆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평소와 달리 "왜 그렇게 조용하니", "왜 친구를 안 만드니" 같은 말 대신, 아이가 그리고 있던 작은 요정 그림을 들여다보며 "정말 아름답다. 이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줄래?"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처음에 저를 경계하듯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이 제가 아이의 세계로 처음 건너간 날이었습니다.
활달함과 빠름이 표준인 세상의 잣대를 내려놓고, 아이가 가진 느리고 조용한 고유한 언어를 배우기로 한 것입니다. 맷이 수어를 되찾았을 때 비로소 챔피언이 된 것처럼, 저도 아이의 수어를 먼저 배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영화 '더 해머'는 자녀나 부하 직원이 평균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불안해하며 억지로 교정하려 했던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뼈아픈 질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아이를 사랑하는 겁니까, 아니면 당신의 불안을 해소하는 겁니까. 영화관을 나오면서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질문은 여전히 저를 놓아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