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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멤버 타이탄 리뷰 (삽겹살, 갈등의 본질, 리더십, 원팀)

by viewpointlife 2026. 4. 26.

리멤버 타이탄 포스터
영화 '리멤버 타이탄'

팀장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썼던 카드가 뭔지 아십니까. 회식이었습니다. 팀원들 사이에 냉기류가 흐를 때마다 저는 어느새 핸드폰을 집어 들고 고깃집을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리멤버 타이탄은 그 습관이 얼마나 비겁한 도피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입니다.

삼겹살로 덮을 수 없었던 것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스포츠 영화를 틀었는데 제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1971년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흑백 분리주의(Racial Segregation)가 일상이던 이 도시에서, 백인 학교와 흑인 학교가 강제 통합되어 T.C. 윌리엄스 고등학교가 탄생합니다. 여기서 흑백 분리주의란 피부색에 따라 학교, 식당, 화장실까지 법으로 분리했던 미국의 제도적 인종차별을 말합니다.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 제정 이후에도 남부 지역에서는 이 관행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출처: 미국 국립인권박물관).

흑인 감독 허만 분이 백인 감독 빌 요스트를 밀어내고 헤드코치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팀은 내전 상태가 됩니다. 저도 처음엔 이 갈등이 그저 영화적 과장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우리 팀 회의실 풍경이 겹쳐 보였습니다. 기성세대와 MZ세대 직원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어도 눈빛은 완전히 딴 곳을 향하고 있던 그 장면들. 피부색 대신 세대와 가치관이라는 벽이 있었을 뿐, 구조는 판박이였습니다.

그때 제가 택한 방법이 회식이었습니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분위기를 녹이고,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차가운 남남으로 돌아오는 그 무한 루프. 그걸 두 해 넘게 반복했습니다.

게티즈버그가 가르쳐준 갈등의 본질

분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달랐습니다. 그는 선수들을 이끌고 게티즈버그 전적지로 달려갑니다. 남북전쟁 최대 격전지. 수만 명이 서로를 죽이며 쓰러져 간 땅입니다. 그 무덤들 사이에서 분 감독은 외칩니다. 서로의 다름을 끝내 인정하지 못하면 저 죽은 자들처럼 파멸한다고.

이 장면이 제게 유독 강하게 남은 이유가 있습니다. 분 감독은 갈등을 없애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선수들이 서로에게 직접 욕설을 퍼붓고 밑바닥 감정까지 쏟아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합숙 훈련에서 흑백 선수들에게 룸메이트를 강제로 배정하고, 상대 팀원에 대해 완벽히 알아올 때까지 매일 달리게 했습니다.

이것은 조직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과는 결이 다릅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팀원이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뜻합니다. 분 감독은 그 안전감을 편안함이 아니라 '충분히 부딪혀도 된다는 허락'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그 차이를 직접 겪어보니 확실히 알겠습니다. 회식 자리의 웃음은 갈등을 봉합할 수 없습니다. 한번 제대로 부딪혀야 비로소 상대방의 진짜 결이 보입니다.

리더가 악역을 자처해야 하는 이유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갈등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팀원들이 저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자칫 상황이 수습 불가 상태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간 관리자들은 적당히 덮는 쪽을 택합니다. 저도 그랬고요.

분 감독은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깼습니다. 그는 스스로 독재자를 자처했습니다. "여기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나는 법이다." 이 발언은 단순한 위협이 아닙니다. 리더가 모든 충돌의 무게를 온전히 끌어안겠다는 선언입니다.

조직행동론(Organizational Behavior)에서는 이를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이라고 부릅니다. 변혁적 리더십이란 구성원의 단기적 이익보다 조직 전체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리더십 유형을 말합니다. 단순히 성과를 관리하는 거래적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과 구분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변혁적 리더십은 구성원의 내재적 동기와 팀 응집력을 동시에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하버드 경영대학원).

분 감독이 보여준 리더십의 핵심 덕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용기
  • 팀원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일관성
  • 리더 스스로 미움받을 위험을 감수하는 단호함
  • 고통스러운 과정 중에도 방향을 잃지 않는 명확한 비전

저는 이 목록을 보며 제가 그동안 네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왼쪽이 강한 이유, 그리고 원팀의 조건

영화 후반부, 백인 주장 게리 버티어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습니다. 병실로 달려온 흑인 주장 줄리어스 캠벨이 말합니다. "Left side, Strong side." 왼쪽이 강한 건 내가 네 옆에 있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춰서 다시 돌려봤습니다. 초반에 서로를 벌레 보듯 혐오하던 두 사람이 이 지점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단 한 시즌이었습니다. 합숙이라는 극단적 환경 속에서 서로의 밑바닥을 다 꺼내 보인 덕분입니다. 팀 응집력(Team Cohesion)이 이토록 빠르게 형성될 수 있었던 건 표면적인 친목이 아니라 실질적인 상호 의존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팀 응집력이란 구성원들이 팀 안에 남으려는 동기와 서로를 향한 신뢰의 총합을 의미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는 여전히 우리 팀 안에 그런 응집력이 부족하다는 걸 압니다. 갈등이 생기면 지금도 저도 모르게 고깃집을 검색하는 손이 먼저 움직입니다. 그 습관을 바꾸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압니다. 회의실 문을 걸어 잠그고 불편한 이야기를 끝까지 꺼내게 하는 것이, 삼겹살 한 판보다 팀을 훨씬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

타이탄스는 그 시즌 13승 무패로 버지니아 주 챔피언십을 차지했습니다. 게리 버티어는 훗날 장애인 올림픽 투포환 금메달리스트가 됐습니다. 두 주장이 함께 흘린 땀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리멤버 타이탄은 스포츠 영화이기 전에, 조직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 대한 가장 솔직한 보고서입니다. 세대 갈등으로 흩어지는 팀을 붙들고 있는 리더라면, 이 영화가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실질적인 교본이 될 것입니다. 불편하더라도 서로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혀 보는 것, 그것이 진짜 원팀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qpx7TsEt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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