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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8)
시뮬런트 리뷰 (상실, 통제, 자유의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한때 가족을 제 머릿속에 설계된 '완벽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게 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영화 를 보다가 그 소름 끼치는 기억이 떠올라 화면을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을 기술로 대체하려는 이 SF 스릴러는, 어쩌면 저 같은 통제광 어른들에게 가장 따끔한 영화일지 모릅니다.상실을 기술로 메울 수 있을까영화는 AI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미래를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페이는 교통사고로 남편 에반을 잃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뮬런트(Simulant)를 집으로 들입니다. 여기서 시뮬런트란, 인간의 기억과 성격 데이터를 그대로 이식해 만들어낸 복제 인간 로봇을 의미합니다. 외모도, 목소리도, 습관도 생전의 에반과 완벽하게 일치하도록 설계된 ..

카테고리 없음 2026. 8. 1. 18:13
스윗 랜드 리뷰 (침묵의 사랑, 흙투성이 연대, 행복의 진짜 의미)

사랑을 증명하는 데 정말 서류 한 장이 필요할까요? 1920년대 미네소타, 언어도 통하지 않고 혼인 서류도 없이 단 한 장의 사진만 믿고 낯선 땅에 도착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를 보다가, 저는 그만 40대 가장으로서 제가 얼마나 껍데기에 집착하며 살아왔는지를 들킨 것 같아 뜨끔해버렸습니다.침묵의 사랑 — 말 한마디 없이도 단단해지는 것영화 속 잉게와 올라프 사이에는 초반에 대화다운 대화가 거의 없습니다. 잉게는 독일어만 하고, 올라프는 노르웨이계 영어를 쓰죠. 이른바 언어적 장벽(language barrier), 즉 두 사람이 서로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언어적 장벽이란 단순히 단어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의도 자체가 전달되지 않는 단절 상태를 말합니다.그런데 이..

카테고리 없음 2026. 7. 12. 14:54
영화 스틸 라이프 후기 (생색내기, 무연고 장례, 헌신)

솔직히 저는 꽤 오랫동안 스스로가 꽤 괜찮은 아빠이자 남편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집안일도 도맡아 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영화 한 편이 그 믿음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2013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수상한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는, 조용하고 느리지만 보고 나면 가슴 어딘가가 오래도록 묵직하게 남는 영화입니다.생색내기: 저는 가족에게 청구서를 들이밀던 어른이었습니다당시 40대 가장이었던 저는,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마다 반드시 인정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말에 청소기를 돌리고 나면 아내에게 "나 진짜 고생했지?"라며 확인을 요구했고, 아이들한테 장난감을 사준 날에는 "아빠가 뼈 빠지게 일해서 사준 거 알지?"라는 말을..

카테고리 없음 2026. 6. 27. 13:45
영화 오베라는 남자 리뷰 (번아웃, 공동체, 깐깐한 아빠)

저도 처음엔 이 영화가 그냥 까칠한 노인의 성장 코미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화면 속 오베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제 얼굴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잃고 직장마저 잃은 한 남자가 삶을 포기하려다 이웃들에게 번번이 방해받는 이야기, 그게 저한테는 꽤 뼈아픈 거울이었습니다.번아웃이라는 진짜 이름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초반의 오베는 그냥 민폐 주민처럼 보입니다. 아침마다 동네를 돌며 자전거가 비뚤게 세워져 있으면 직접 치워버리고, 외부 차량이 주차장에 들어오면 달려가 삿대질을 해댑니다. 처음 볼 때는 '저런 이웃이 있으면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그런데 저는 한때 제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며 다시 깨달았습..

카테고리 없음 2026. 6. 20. 10:16
사막에서 연어낚시 영화 리뷰 (불가능한 믿음, 수박씨 소동, 기적의 의미)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시작하는 사람을 보면, 솔직히 처음엔 답답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그 결말이 생각보다 자주 우리 예상을 비껴간다는 것입니다. 영화 '사막에서 연어낚시'는 그 불편한 진실을 잔잔하게, 그러나 꽤 세게 찌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작년 여름 베란다에서 벌였던 한 소동이 떠올라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과학자의 확신과 왕자의 믿음 사이영국 농림부 소속 수산학자 알프레드 존스 박사는 예멘 사막에서 연어 낚시를 하겠다는 셰이크 무함마드의 프로젝트를 처음 접하자마자 단칼에 거절합니다. 그의 반응은 충분히 납득할 만했습니다. 어류학(魚類學), 즉 어류의 생태와 서식 환경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의 관점에서 보면, 연어는 수온 섭씨 6~14도의 냉수성 어종입니다. 여기..

카테고리 없음 2026. 6. 16. 10:20
영화 카모메 식당 리뷰 (텅 빈 식당, 위로의 기술, 배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 예약이 취소된 그날 저녁, 거실 바닥에 둘러앉아 엉망진창 주먹밥을 뭉치던 제 가족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으니까요. 영화 한 편이 그 기억을 다시 꺼내주었습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천천히 익어가는 것들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영화, 카모메 식당입니다.텅 빈 식당이 왜 문을 닫지 않았을까저도 처음엔 이 영화의 설정이 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픈한 지 한 달이 넘도록 손님이 한 명도 없는데, 주인공 사치에는 왜 불안해하지 않는 걸까. 보통은 이쯤 되면 메뉴를 바꾸거나 SNS 마케팅을 시작하거나, 아니면 그냥 문을 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정상 아닐까요.그런데 사치에는 다릅니다. 그녀는 매일 쌀을 씻고 물을 맞추고 밥이 완성되기를 기다립니다. 이 장면이..

카테고리 없음 2026. 6. 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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