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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 (17)
영화 Nowhere Man 리뷰 (미장센, 예술적자존심, 생명력)

잘 나가다 갑자기 아무것도 안 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도 한때 열심히 하던 일이 어느 순간 세상의 흐름과 어긋나버리는 경험을 했는데, 그때 우연히 접한 영화 한 편이 이상하게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일본 영화 입니다. 실패한 만화가가 강가에서 돌을 주워 팔기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웃기면서도 어딘가 묵직하게 찔려오는 작품이었습니다.강가의 돌을 파는 남자 — 미장센이 말하는 것한때 꽤 인기를 끌었던 만화가 스케조는 상업적 타협을 거부하다 결국 업계에서 완전히 잊힙니다. 고물상, 중고 카메라 판매 같은 엉뚱한 사업을 전전하다 모두 실패하고, 급기야 다마강 둔치에 오두막을 짓고 강가에서 주운 돌을 팔기 시작하죠. 저도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황당했습니다. '저게 팔린다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

카테고리 없음 2026. 8. 24. 11:40
해가 지다 영화 리뷰 (카타르시스, 부채할복, 요시노)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잘 죽는 것'이 이토록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1829년 에도 막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억울한 할복 처분을 받은 무사 규조와 그의 아내 요시노의 마지막 하루를 다룹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건드린 건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거든요.억울함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법 — 카타르시스의 구조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카타르시스(catharsis)의 작동 방식이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정의한 개념으로, 비극을 통해 쌓인 감정의 응어리가 한순간 폭발하듯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슬퍼서 운다"와는 다릅니다. 감정이 오랫동안 눌렸다가 임계점을 넘어설 때 ..

카테고리 없음 2026. 7. 25. 16:40
코튼테일 영화 리뷰 (켄자부로, 애도의식, 부자관계)

당신은 지금 가족에게 제대로 된 말 한마디 건네고 있습니까? 영화 을 보기 전까지 저는 '묵묵히 돈 버는 것'이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가족을 숨 막히게 해왔는지, 릴리 프랭키가 연기한 켄자부로의 처연한 뒷모습이 뼈아프게 일깨워줬습니다.켄자부로의 영국 방랑, 그 뒷모습이 왜 이렇게 아플까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가족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임종의 순간 앞에서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그저 옆에서 굳어버리는 느낌. 켄자부로가 딱 그렇습니다.영화는 간단한 설정으로 시작됩니다. 중년의 소설가 켄자부로는 아내 아키코와의 결혼기념일에 수산시장에서 문어 한 팩을 슬쩍 집어 들고 단골 초밥집으로 향합니다. 그 초밥집은 젊은 시절 아키코와 처..

카테고리 없음 2026. 7. 18. 18:11
영화 나는 빛을 움켜쥐고 있어 리뷰 (도시의 속도, 낡은 것, 카타르시스)

남들의 SNS 속 번듯한 일상을 보며 문득 "나는 왜 이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인가" 싶어 스크롤을 멈춰버린 밤이 있으셨다면, 이 영화가 그 답 대신 조용한 위로를 건네줄 것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도 비슷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보고 나서 꽤 오래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도시의 속도에 치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도쿄로 상경한 스무 살 미오는 화려한 도심의 속도를 도무지 따라잡지 못합니다. 주눅 들고 어색한 채로 거리를 걷는 그녀가 유일하게 숨을 트는 공간은,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낡은 대중목욕탕입니다. 세련된 카페도, 번듯한 오피스도 아닙니다.영화는 이 공간을 통해 도시 사회학에서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지역..

카테고리 없음 2026. 6. 22. 21:48
영화 앳 홈 리뷰 (범죄가족, 식구의미, 가족본질)

아버지는 빈집털이범, 어머니는 사기꾼, 장남은 문서 위조 전문가. 영화 한 편이 저한테 던진 첫 질문은 "그래서 이 집이 가족이 맞냐"였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저는 오히려 제 자신한테 그 질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정의를 남들의 시선으로 검증하려 했던 제 옛날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범죄자 가족이 보여준 가족의 본질일반적으로 가족이란 혈연(血緣), 즉 생물학적 혈통으로 이어진 관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혈연이란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처럼 피를 나눈 법적·생물학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건, 그 정의가 생각보다 훨씬 허술하다는 것이었습니다.영화 속 카즈히코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카즈히코는 과거 도둑..

카테고리 없음 2026. 6. 14. 15:21
영화 카모메 식당 리뷰 (텅 빈 식당, 위로의 기술, 배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 예약이 취소된 그날 저녁, 거실 바닥에 둘러앉아 엉망진창 주먹밥을 뭉치던 제 가족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으니까요. 영화 한 편이 그 기억을 다시 꺼내주었습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천천히 익어가는 것들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영화, 카모메 식당입니다.텅 빈 식당이 왜 문을 닫지 않았을까저도 처음엔 이 영화의 설정이 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픈한 지 한 달이 넘도록 손님이 한 명도 없는데, 주인공 사치에는 왜 불안해하지 않는 걸까. 보통은 이쯤 되면 메뉴를 바꾸거나 SNS 마케팅을 시작하거나, 아니면 그냥 문을 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정상 아닐까요.그런데 사치에는 다릅니다. 그녀는 매일 쌀을 씻고 물을 맞추고 밥이 완성되기를 기다립니다. 이 장면이..

카테고리 없음 2026. 6. 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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