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걸어도 걸어도 리뷰 (서사구조, 통제, 40대, 인정)

by viewpointlife 2026. 5. 24.

걸어도 걸어도 포스터
영화 '걸어도 걸어도'

가족 영화는 보고 나면 따뜻해진다고들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는 <걸어도 걸어도>를 보고 나서 오히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서늘함이, 어떤 감동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탄생시킨 이 영화는, 가족이란 단어에 우리가 품고 있는 환상을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찌릅니다.

신파 없이도 가슴을 찌르는 서사 구조

일반적으로 가족 영화라고 하면 극적인 화해 장면이나 눈물을 쏟아내는 절정부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그런 영화들은 극장 밖을 나서는 순간 급속도로 증발합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다릅니다. 이 영화에는 오열 신도 없고 감동적인 화해 장면도 없습니다. 그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계단을 오르내릴 뿐입니다.

영화의 서사는 10년 전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 숨진 장남 준페이의 기일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막내아들 료타가 재혼한 아내 유카리, 그리고 유카리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아츠시를 데리고 본가를 찾아오는 하루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여기서 고레에다 감독이 구사하는 것이 바로 미장센(mise-en-scène) 기법입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앵글이나 조명, 배우의 동선 등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로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요리하는 어머니의 손, 무심코 시선을 피하는 아버지의 옆모습, 어색하게 앉은 가족들의 거리감 같은 것들이 대사 없이도 이 가족의 내력을 전부 설명해 냅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들을 볼 때 "아, 이 집 분위기 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무섭도록 정확했습니다.

어머니의 옥수수 튀김, 사랑인가 통제인가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어머니 토시코가 온 가족을 위해 옥수수튀김을 만드는 장면입니다. 일반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의 모습은 희생과 사랑의 표상으로 읽힌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 장면을 보며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토시코는 식탁 위에 정성껏 차린 음식들로 가족을 불러 모으고, 며느리 유카리가 레시피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은근히 실망하는 기색을 드러냅니다. 故 키키 키린이 연기한 이 어머니는 단순히 헌신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죽은 아들 준페이를 구하다 살아남은 소년 요시오를 매년 기일에 불러들여, "그래야 우리 준페이의 죽음이 덜 억울하지"라고 담담하게 내뱉는 그 장면에서 저는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와 유사한 기제입니다. 투사적 동일시란 자신의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그 감정을 처리하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를 말합니다. 토시코는 슬픔과 억울함을 요시오에게 조용히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상실감을 견뎌온 것입니다. 모성애의 가장 솔직하고 잔인한 밑바닥이 그렇게 우아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제가 본 수많은 가족 영화 중에서 이 작품 외에는 없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세계를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그는 일관되게 "죽음 그 자체보다 남겨진 자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작가적 관점을 유지해 왔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버려진 아이들을, <디스턴스>에서는 가해자의 유가족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그 연장선에서 죽은 장남으로 인해 해마다 모이는 남겨진 가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아버지와 아들, 40대가 되어서야 보인 것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료타와 아버지의 관계가 저 자신과 저희 아버지를 이렇게 정확하게 비춰낼 줄은 몰랐습니다.

은퇴한 의사인 아버지 교헤이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가족들과 좀처럼 섞이지 못하며, 거실 텔레비전 앞에 섬처럼 앉아 있습니다. 료타는 그 옆에서 어색하게 시간을 때웁니다. 제가 40대가 되어 명절에 본가에 내려갔을 때 아버지 옆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던 그 장면과 화면 속 료타의 모습이 정확하게 겹쳤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의원을 료타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고, 료타는 그 강압적인 방식이 불편해 거부합니다. 어릴 적 꿈은 형과 함께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형이 죽고 나서 그 꿈에서 멀어졌다는 설정은 료타라는 인물의 상처를 군더더기 없이 설명합니다.

<걸어도 걸어도>가 보여주는 가족 역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족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환상
  •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들키기 싫은 진짜 감정들
  • 가족이기 때문에 상처받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잔인함
  • 그 모든 것을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덮어버리는 관성

영화 후반부, 본가를 떠나며 료타가 독백으로 내뱉는 "항상 이렇다니까. 꼭 한 발씩 늦는다"는 대사는 제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를 얹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뒤늦게 떠오르는 약속들과 다짐들. 저도 그 후회를 압니다.

카타르시스는 눈물이 아닌 인정에서 온다

일반적으로 가족 영화의 카타르시스는 화해와 눈물에서 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걸어도 걸어도>가 주는 해방감은 전혀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 바로 "우리 가족의 그 어색함이 사실 비정상이 아니었구나"라는 인정에서 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원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개념으로, 비극을 통해 관객이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하고 정화되는 심리적 경험을 의미합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결말에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부모의 죽음을 맞이하는 료타를 담담하게 비춥니다.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그러나 남겨진 료타가 자신의 가족과 함께 아버지가 걷던 그 계단을 묵묵히 걸어 오르는 장면에서, 삶이란 그렇게 계속된다는 덤덤한 진실이 전해집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도 꾸준히 예술영화 관객층을 형성해 왔으며, <걸어도 걸어도>는 그중에서도 40대 이상 관객에게 특히 높은 공감 지수를 기록한 작품으로 분류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제가 그 통계가 왜 그런지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해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부모님 댁에 가는 일이 왠지 무겁고 숙제처럼 느껴지는 분들, 그리고 부모님의 늙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찌릿하면서도 막상 마주 앉으면 짜증부터 튀어나와 돌아서서 후회하는 분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 우리 가족의 지독한 어색함과 투박함이 사실 아주 평범한 삶의 풍경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저도 살가운 아들이 되는 건 이번 생엔 글렀을지 모릅니다. 다음번 본가에 내려가면 또 아버지 옆에서 할 말이 없을 것이고, 어머니 잔소리에 미간을 찌푸릴 것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 서툰 발걸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부모님이 아직 곁을 걷고 계실 때, 한 발씩 늦더라도 괜찮으니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jKGk0kizhM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