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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건너편 리뷰 (무뚝뚝한 환대, 연대, 아키 카우리스마키)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세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제가 영화 한 편 때문에 그 믿음을 완전히 내려놓게 됐습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2017년작 은 시리아 난민 문제를 다루면서도 눈물 한 방울 짜내지 않고, 오히려 무표정한 웃음 사이로 가장 묵직한 인간 연대의 이야기를 조용히 꺼내놓는 영화입니다.무뚝뚝한 환대 — 거창한 선의 없이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제가 40대 가장으로 살아온 시간 동안, 저는 꽤 단단한 울타리를 쳐두고 있었습니다. 길에서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을 마주치면 아이의 손을 꽉 잡고 반대편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나라에서 다 알아서 할 일이야"라는 말을 아이에게 단호하게 내뱉으면서, 그게 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습니..

카테고리 없음 2026. 7. 27. 21:28
영화 이프 아이 워 유 리뷰 (배경, 공감, 해방)

"내가 너라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40대 가장으로서 집안의 모든 문제를 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 말입니다. 영화 를 보다가 그 오만함이 얼마나 서늘한 폭력이었는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배경 — "내가 너라면"이라는 말의 민낯일반적으로 "내가 너라면"이라는 말은 공감의 표현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꽤 다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말을 가족에게 휘두르는 서늘한 흉기로 사용해 왔습니다.아이가 친구와 다퉈 울면서 돌아오면 등을 두드리는 대신 팔짱을 끼고 말했습니다. "아빠가 너라면 그렇게 질질 짜고 있지 않아. 내일 당장 논리적으로 따져!" 아내가 육아에 지쳐 하소연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당신이라면 시간 날 때 틈틈이..

카테고리 없음 2026. 7. 26. 13:19
해가 지다 영화 리뷰 (카타르시스, 부채할복, 요시노)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잘 죽는 것'이 이토록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1829년 에도 막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억울한 할복 처분을 받은 무사 규조와 그의 아내 요시노의 마지막 하루를 다룹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건드린 건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거든요.억울함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법 — 카타르시스의 구조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카타르시스(catharsis)의 작동 방식이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정의한 개념으로, 비극을 통해 쌓인 감정의 응어리가 한순간 폭발하듯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슬퍼서 운다"와는 다릅니다. 감정이 오랫동안 눌렸다가 임계점을 넘어설 때 ..

카테고리 없음 2026. 7. 25. 16:40
천문 하늘에 묻는다 리뷰 (지음, 신분제, 훈민정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이가 집으로 데려온 짝꿍을 보며 속으로 '왜 하필 저런 애랑'이라고 중얼거렸던 그 밤, 저는 스스로가 얼마나 천박한 어른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의 가치를 배경과 스펙으로만 재단해온 제 삶의 방식이 조선 사대부의 신분 타령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낯뜨겁게 박혀들었습니다.지음(知音) —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의 무게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은 건 전투씬도, 볼거리도 아니었습니다. 세종(한석규)이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장영실(최민식)에게 자신이 구상 중인 자동 물시계의 설계도를 꺼내 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왕이 노비 출신 기술자에게 먼저 말을 거는 그 순간의 공기감이, 스크린 밖으로 흘러..

카테고리 없음 2026. 7. 24. 15:41
더 컨덕터 리뷰 (여성 지휘자, 편견 극복, 여성 오케스트라)

"넌 왜 남들처럼 피아노나 안 치냐?" 딸아이가 학교 여자 축구부 주장을 하겠다고 했을 때, 제 입에서 그 말이 나왔습니다. 입으로는 남녀평등을 외치면서도 정작 제 딸 앞에 유리천장을 세우고 있었던 겁니다. 영화 (2019)는 바로 그런 저의 낡은 잣대를 정면으로 박살 낸 작품입니다.여성 지휘자 안토니아 브리코, 편견의 벽을 지휘봉으로 부수다과연 '재능이 없어서' 기회를 못 받은 걸까요, 아니면 '기회를 주지 않아서' 재능을 증명할 수 없었던 걸까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그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영화는 실존 인물인 안토니아 브리코(Antonia Brico)의 일생을 다룹니다. 그녀는 190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세계 최초로 전문 지휘 교육을 이수한 여성..

카테고리 없음 2026. 7. 23. 09:59
영화 4등 리뷰 (사랑의 폭력, 성과주의, 부모 반성)

아이 몸에 남은 멍자국을 보면서도 "4등 하는 것보다 맞는 게 덜 무섭다"고 말하는 엄마. 2015년 개봉한 영화 의 그 장면은, 제가 몇 년 전 아이를 스파르타식 학원에 밀어 넣으면서 스스로에게 해왔던 말과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그날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발이 무거웠습니다.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 광수 코치와 준호 엄마가 공유한 것영화는 대회만 나가면 4등을 하는 수영 소년 준호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준호의 엄마는 1등에 집착한 나머지 과거 아시아 수영 선수권 대회 우승 경력을 가진 광수 코치를 고용합니다. 광수는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명분으로 준호를 무자비하게 때립니다.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출전한 대회에서 준호는 마침내 은메달을 겁니다.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서늘했던 순간..

카테고리 없음 2026. 7. 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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