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조건'이 사랑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좋은 학교, 넉넉한 돈, 번듯한 직함. 그게 가족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요.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의 를 보고 나서야, 그 믿음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실제 할리우드 배우 조지 해밀턴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웃기고 따뜻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영화 줄거리: 남편 대신 자신을 찾은 여자1950년대 뉴욕. 최고의 재즈 밴드 리더이자 바람기 넘치는 남편을 결국 떠난 앤은, 두 아들 조지와 로비를 데리고 '새 남편'을 찾아 대륙 횡단 로드트립에 나섭니다. 그녀가 믿는 건 하나뿐입니다. 돈 많고 안정적인 남자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일반적으로 로드무비(Road Movie)라 하면 자..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좋은 치료'란 안전하고 효율적인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사람을 가두는지는, 아이가 창밖을 바라보며 "바람 좀 쐬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던 그날에야 처음 실감했습니다. 앤디 서키스 감독의 2017년 실화 영화 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하는 영화입니다. 전신마비 환자 로빈 카베나디시와 아내 다이애나의 이야기는, 삶이란 '숨만 쉬는 것(survive)'이 아니라 '세상을 느끼며 사는 것(live)'임을 뼈아프게 일깨웁니다.앤드류 가필드의 연기, 얼굴 하나로 절망과 희열을전신마비(Quadriplegia)를 연기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전신마비란 경추 손상 또는 특정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목 아래 사지 전체의 운동 기능과 감각이..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 다치지 않게 막는 것이 맞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한 편이 그 믿음을 산산이 흔들어놓았습니다. 2019년 개봉한 로드무비 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22살 청년 잭이 요양원을 탈출해 레슬러의 꿈을 쫓는 이야기인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내내 떠올린 건 스크린 속 잭이 아니라, 놀이터 구석에서 무릎이 까진 채 보드를 타던 제 아이였습니다.장애 재현 방식: 일반적 통념과 이 영화의 실제는 달랐습니다영화에서 장애를 다루면 으레 두 가지 클리셰가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장애인 캐릭터를 불쌍하고 무력한 존재로 대상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지나치게 영웅화해 감동을 '소비'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도 솔직히 그 둘 중 하..
루마니아에서 복권 당첨금이 연이어 미수령 상태로 쌓이던 2000년대 중반, 단 키슈 감독은 그 사회적 풍경에서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건져 올렸습니다. 영화 를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저거 저 사람들 얘기가 아닌데"라는 서늘한 감각이었습니다.허상 —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좇는 사람들영화의 원제는 '벽에 그려진 초록색 말(Și caii sunt verzi pe pereți)'입니다. 루마니아어 관용 표현으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헛된 환상'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목을 매는 상태, 그 자체를 제목으로 삼은 겁니다.영화는 두 개의 플롯을 교차시킵니다. 하나는 가짜 복권 사이트에 현혹된 청년 마리우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고, 다른 하나는 창고에 숨겨진 불법 약물로 한탕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붙들어 두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요, 아니면 소유일까요. 시드니 폴락 감독의 1985년작 는 이 질문 하나로 장장 160분을 끌고 나갑니다. 처음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본 건 제 아이의 문제집을 억지로 덮어준 어느 밤이었습니다. 화면 속 카렌의 뒷모습이 그날 밤 제 모습과 겹쳐 보여서,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소유 철학: 카렌이 아프리카에서 배운 것영화는 덴마크 귀족 여성 카렌 블릭센(메릴 스트립)이 남작 칭호를 얻기 위해 정략적으로 브로르 블릭센(클라우스 마리아 브란다우어)과 결혼하고 케냐로 향하는 장면으로 문을 엽니다. 그녀가 아프리카에서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은 커피 농장 경영이었는데, 이것이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그녀의 세계관 그 자체였습니다. 유럽식 정원처럼 땅을 다듬고, 키쿠유..
아이가 데려온 친구를 보자마자 속으로 품평부터 했던 적이 있습니다. 입고 있는 옷, 사는 동네, 부모의 직업. 그 계산이 끝나기도 전에 "네 성적에 도움이 안 되는 애"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지요. 그런 제가 2004년작 를 보고 나서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1904년 뉴욕을 배경으로, 상류층 소녀 사만다와 하녀 넬리의 우정이 어떻게 어른들의 계급 편견을 무너뜨리는지 보여주는 이 영화는, 제 오만했던 과거를 정확히 겨냥했습니다.우정이 계급 편견을 만났을 때1904년 미국은 계층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계급 구조(class stratification)—쉽게 말해 태어난 집안이 평생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짓는 구조—는 법으로 명시된 것이 아니었지만 관습과 암묵적 규칙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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