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라 불리던 개가 사실은 가장 순수한 존재였다면, 그렇다면 진짜 야수는 누구였을까요. 2013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화 〈벨과 세바스찬〉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스크린 속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때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편견이라는 이름의 야수 — 벨과 세바스찬이 드러낸 것영화는 1945년 프랑스 알프스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양 떼를 물어 죽인다는 소문이 도는 거대한 떠돌이 개, 마을 사람들은 총을 들고 그 개를 추적합니다. 그런데 꼬마 세바스찬만은 달랐습니다. 진흙을 뒤집어쓴 그 개의 눈동자에서 위협이 아닌 무언가를 본 것입니다. 세바스찬은 그 개에게 '벨(Bell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흙먼지를 씻어내자 눈부..
길을 잃고 우는 낯선 아이 앞에서, 모른 척 지나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제 아이 손을 끌며 "저 애는 직원이 알아서 찾아줄 거야"라고 말하면서요. 1998년 브라질 영화 을 처음 봤을 때,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냉소가 얼마나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지, 이 영화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보여줍니다.영화 속 팩트: 편지를 버리는 여자와 아버지를 찾는 소년제가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충격받은 장면은, 도라가 사람들의 편지를 서랍 속에 쌓아두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중앙역에서 문맹자들을 대신해 편지를 써주는 도라는, 그 편지들을 단 한 통도 부치지 않습니다. 사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딕 로리 감독의 2001년 홀마크 영화 를 보다가 제 눈물샘이 터진 게 아니라, 제 안의 오래된 부끄러움이 터져버렸거든요.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 다이앤, 그 곁을 6년이 넘도록 묵묵히 지키는 의사 데이비드, 그리고 도망쳐버린 남편 마크. 세 인물이 그려내는 대비 속에서 저는 한때 제가 마크와 너무 닮아 있었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했습니다.조건부 사랑이라는 함정, 저도 거기 빠져 있었습니다영화 속 마크는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다이앤에게 진심으로 반했고, 모두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뱃속 아이에게 심각한 유전적 장애가 있다는 진단이 내려지자, 그는 아이를 지울 것을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딸 줄리아가 태어나고서도 마크는 그 삶을 감당하지 못..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자신의 꿈이 아니라 '남겨질 사람들'이라면, 그건 비극일까요 아니면 사랑일까요. 이자벨 코이셋 감독의 은 그 질문에 조용하고도 묵직하게 답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오랫동안 외면해 온 제 자신의 어리석음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습니다.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울지 않는 여자보통 시한부 영화를 생각하면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까. 병실에서 오열하는 장면, 가족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장면, 세상을 원망하는 장면. 그런데 의 주인공 앤은 다릅니다. 초음파 검사 결과를 들으러 혼자 병원을 찾은 그녀는 의사에게 두 달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남편에게 전화를 넣지 않습니다. 그냥, 혼자 걸어 나옵니다.23살의 앤은 트레일러하우스에서 남편과 두 딸을 키우며 대..
솔직히 처음엔 이 영화가 그냥 환경 캠페인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맷 데이먼이 나오는 2012년작 를 뒤늦게 찾아봤는데, 보는 내내 제 40대 시절의 오만함이 화면에 겹쳐 보여서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천연가스 채굴 기업의 협상가가 시골 마을에서 겪는 균열, 그리고 결국 스스로 거짓을 폭로하는 결말.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라서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걸립니다.프래킹이라는 기술이 은폐하는 것들영화의 핵심 소재는 수압파쇄법(프래킹, Hydraulic Fracturing)입니다. 여기서 프래킹이란 지하 수천 미터 암반층에 고압의 물과 화학물질을 주입해 셰일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전통적인 시추 방식으로는 닿지 않던 자원을 끌어내는 기술입니다. 쉽게 말해 땅속을 화학적으로 부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지하수 ..
1952년 사우스다코타 시골 마을, 청각장애인 남성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편견이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순간, 저는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그건 영화 속 낯선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때 아이에게 "말 못 하면 바보야"라며 윽박질렀던 제 자신의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마크 밀러 감독의 독립 영화 는 그 불편한 거울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들이밉니다.1952년 사우스다코타, 침묵이 먼저 말을 건네는 마을영화의 배경은 전후(戰後) 미국 사회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시점, 사우스다코타의 작은 마을 베레스포드는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촘촘한 계급과 편견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죠. 주인공 로즈는 도시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직장 여성으로, 관절염이 악화된 어머니 퍼를 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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