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울면서 들어왔을 때, 저는 그 아이 앞에 마주 앉아 "왜 졌는지"를 분석했습니다. 그게 좋은 아빠의 역할이라고 믿었으니까요. 2015년작 를 보고 나서야, 그 믿음이 얼마나 잔인한 오만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93세의 셜록 홈즈가 치매와 싸우며 자신의 마지막 사건을 되짚는 이 영화는, 이성과 논리가 닿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에 대한 묵직한 고백입니다.이성의 한계 — 차가운 팩트가 사람을 구하지 못할 때홈즈가 은퇴한 이유를 두고 "명탐정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그는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하게 해결해 버렸고, 그것이 문제였습니다.영화 속 앤 켈모트 부인은 두 번의 유산 끝에 깊은 멜랑꼴리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출소한 마약 중독자 엄마의 이야기라길래, 저는 뻔한 구원 서사를 각오하고 켰습니다. 그런데 2006년 독립영화 는 그 예상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제 마음속에 남은 건 셰리가 아니라, 제가 한때 아이에게 했던 차가운 말들이었습니다.새벽 화장실에서 본 아이의 뒷모습40대 가장으로 살던 시절, 저는 스스로를 꽤 합리적인 아버지라고 믿었습니다. 아이가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성적이 떨어졌을 때, 저는 기회를 줬습니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고, 저는 그 약속을 액면 그대로 믿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을 '요구'했다는 게 맞겠군요.며칠 뒤 이불속에서 몰래 게임을 하는 아이를 발견했을 때, 저는 폰을 바닥에 내..
아이에게 "잠재력을 다 끌어내라"고 다그친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런데 영화 을 보고 나서, 제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선천성 희귀 질환으로 두 눈이 멀고 사지를 제대로 펼 수조차 없었던 패트릭 헨리 휴즈와, 아들의 휠체어를 밀며 대학 마칭 밴드 대열에 합류한 그의 아버지 패트릭 존 휴즈. 두 사람의 실화는 생각보다 훨씬 묵직하게 가슴을 건드렸습니다.부성애의 민낯 — 미화 없이 날것으로영화 속 패트릭 존 휴즈는 처음부터 헌신적인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미식축구를 사랑하는 그가 꿈꿨던 건 아들과 캐치볼을 하는 평범한 미래였습니다. 1988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난 아들 패트릭 헨리는 선천성 무안구증(Anophthalmia)과..
저도 처음엔 이 영화를 보면서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습니다. 사건도 없고, 눈물 흘리는 장면도 없고, 그냥 몬태나의 허허벌판에 세 여자가 각자 살아가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 뒤에도 목장 일꾼 제이미의 눈빛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눈빛이 왜 그렇게 오래 남는지를 생각하다가, 저는 어느 늦은 밤 아이의 손에 쥐여 있던 낡은 열쇠고리를 떠올렸습니다. 말 대신 침묵으로 마음을 건네는 방식, 이 영화는 그걸 정면으로 바라봅니다.침묵의 언어 — 말해도 듣지 않는 세계에서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분명히 옳은 말을 했는데, 상대가 다른 사람 입으로 똑같은 말을 들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는 경우 말입니다. 저는 영화 속 변호사 로라를 보면서 그 감각이 선명하게 되살아났습..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밥과 집이라고 믿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1997년작 영화 는 그 착각을 산산조각 냅니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이중의 비극 속에서도 열한 살 소녀 엘렌은 구원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짐을 싸서 문을 두드립니다. 캐이 기번스의 자전적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단어를 핏줄이 아닌 다른 언어로 다시 정의합니다.자기 구원 — 구원자를 기다리지 않은 아이피해자성(victimhood)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피해자성이란, 자신이 처한 불행을 외부 탓으로만 귀결하며 수동적으로 머무르는 심리적 상태를 뜻합니다. 엘렌은 이 피해자성의 함정을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아버지의 주먹을 피해 교사 줄리아의 집에 잠시 몸을 맡기고, 법정에서는 판사에..
2005년 개봉한 는 자넷 오크의 베스트셀러 '프레리 러브'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을 원작으로 한 서부 개척 드라마입니다. 총잡이나 결투 같은 화려한 장면은 단 한 컷도 없습니다. 대신 덜컹거리는 마차, 갈라진 손바닥, 흙먼지 속에서도 끝내 피어나는 삶의 온기가 영화 전체를 채웁니다. 솔직히 처음엔 너무 고요해서 지루할 것 같았는데,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개척 서사 — 고난이 없으면 땅도 없다영화는 미시(에린 코트렐)와 윌리(로건 바솔로뮤) 부부가 마차 행렬에 합류해 서부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홈스테딩(Homesteading)이라는 개척 제도, 즉 황야에 정착해 일정 기간 땅을 직접 일구면 소유권을 인정해 주던 19세기 미국의 실제 법적 장치를 배경으로 합니다. 여기서 홈스테딩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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