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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댄스 동아리 활동을 "시간 낭비"라며 다그쳤던 저는,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오래 틀려왔는지를 깨달았습니다. 1999년 거제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빅토리>는 치어리딩이라는 소재를 빌려, 응원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이야기합니다. 발랄한 청춘 영화로만 보기엔 너무 뜨겁고, 스포츠 영화라기엔 코트 바깥 이야기가 훨씬 더 웁니다.
치어리딩, 그게 뭔지 알고 보셨습니까?
혹시 치어리딩을 그냥 '예쁜 옷 입고 폼폰 흔드는 것' 정도로만 알고 계셨다면, 이 영화가 그 생각을 조금 바꿔줄지도 모릅니다. 저도 솔직히 그런 편견이 없지 않았습니다.
치어리딩(Cheerleading)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나뉩니다. 댄스 치어리딩(Dance Cheerleading)은 군무와 안무 중심의 퍼포먼스이고, 스턴트 치어리딩(Stunt Cheerleading)은 피라미드나 공중 동작처럼 고난도 기술을 결합한 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션 응원(Motion Cheering)은 구호와 팔 동작으로 관중을 이끄는 전통적인 형태입니다. 여기서 '스턴트'란 플라이어(Flyer), 즉 공중에 올라가는 역할을 팀원들이 함께 받쳐주는 고위험 고난도 기술을 뜻합니다. 영화 속 밀레니엄 걸즈가 경쟁 팀의 스턴트를 보고 눈을 반짝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던 거죠.
실제로 응원이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은 체육학 분야에서도 꾸준히 연구된 주제입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APA)에 따르면, 관중의 적극적인 응원은 선수의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높여 실제 퍼포먼스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발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 효능감이란,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의 강도를 가리키는 심리학 개념으로, 경기 상황에서 집중력과 지구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영화 속 교장 선생님을 설득하던 코치의 "응원받으면 경기력이 50% 향상된다"는 대사가 단순한 허풍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밀레니엄 걸즈의 구성을 보면, 이 영화가 치어리딩의 장르적 특성을 꽤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처음엔 목적이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댄스 연습실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으니까요.
- 오디션을 통해 멤버를 뽑고, 리더가 팀 전체를 지도하는 실제 치어리딩 팀 구성 방식을 그대로 따릅니다.
- 실전 무대에서의 실패와 팀 붕괴, 재결합이라는 서사 구조는 스포츠 팀 다큐멘터리의 전형을 닮았습니다.
- 응원의 대상이 축구 선수에서 조선소 노동자 아버지들로 확장되는 지점이 이 영화의 진짜 핵심입니다.
거제도 1999년, 그 시절 아버지들의 이야기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게 단순한 청춘 영화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소 노동자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입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거제 지역 조선소는 대규모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출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8년 한 해 동안 제조업 분야 실업률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조선업 밀집 지역인 거제는 그 충격이 특히 심했습니다. 영화는 그 서늘한 현실을 배경 삼아, 소녀들의 댄스와 어른들의 절망을 한 프레임에 담아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했던 순간은, 필선이 파업 현장으로 달려가 고개 숙인 아버지들 앞에서 울먹이며 치어리딩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완벽한 안무도, 멋진 의상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땀범벅이 된 교복 입은 소녀 하나가, 쓰러질 것 같은 어른들 앞에서 온몸으로 "파이팅!"을 외치는 장면이었는데, 극장 안이 조용해지던 그 온도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보통의 스포츠 영화에서 주인공은 경기장 안에서 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경기는 코트 밖에서 벌어집니다. 지고 있는 사람, 무너진 사람, 힘이 빠진 사람 곁에서 폼폰을 드는 것. 그 이타적인 응원의 에너지야말로 이 영화가 끝까지 붙들고 있는 주제입니다.
거제도 사투리를 찰지게 구사하는 배우 이혜리의 연기는, 제가 직접 보고 나서야 왜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필선 캐릭터'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함, 폼 잡지 않는 순수함. 그게 오히려 이 영화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딸아이의 축제 무대를 팔짱 끼고 뒷자리에서 보던 제 모습이 이 영화 속 '반응 없는 관중'과 너무 닮아 있어서, 보는 내내 식은땀이 났습니다. 제 경험상, 아이의 댄스를 "쓸데없는 일"로 치부했던 그 시간이 제가 인생에서 저지른 가장 옹졸한 실수 중 하나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빅토리, 실화 바탕인가요?
A. 영화 빅토리는 실화를 직접 재현한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1999년 거제도라는 배경과 조선소 구조조정이라는 시대적 맥락은 당시 실제로 있었던 사회적 사건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적인 배경이 영화에 묵직한 무게감을 더해주는 것 같지 않으셨나요?
Q. 치어리딩 스턴트가 영화에 실제로 나오나요?
A. 영화 본편에서 스턴트 치어리딩 장면은 짧게 등장합니다. 밀레니엄 걸즈가 경쟁 팀의 스턴트를 목격하고 자극받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 치어리딩의 다양한 방식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스턴트를 직접 시도하려는 장면에서 "플라이어도 없고"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혹시 그 대사에서 웃으셨다면 이제 이유를 아시겠죠?
Q. 아이가 함께 보기에 괜찮은 영화인가요?
A. 초반에 나이트클럽 장면이나 청소년 간의 싸움 묘사가 일부 있어 어린 자녀와 함께 볼 때는 참고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학생 이상 자녀와 부모가 함께 보기에는 오히려 더없이 좋은 영화입니다. 보고 나서 "나 요즘 뭘 위해 응원받고 싶어?"라고 아이에게 물어보시면 대화가 꽤 깊어질 수 있습니다.
Q. 이혜리 외에 다른 배우들 연기는 어떤가요?
A. 밀레니엄 걸즈를 구성하는 앙상블 배우들이 전반적으로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습니다. 특히 사투리 연기의 완성도가 꽤 높아, 거제 출신이 아닌 분들도 그 질감에 금방 빠져드실 겁니다. 이혜리의 에너지가 워낙 압도적이긴 하지만, 다른 멤버들 각자의 캐릭터도 충분히 살아 있습니다.
결론
영화 빅토리를 다 보고 나서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에게 문자를 하나 보냈습니다. "오늘 연습 잘했어? 보고 싶다." 평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1999년이라는 시대적 향수를 영리하게 활용하면서도, '응원'이라는 행위가 가진 이타적 에너지를 진정성 있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시합에서 이기는 것보다 무너진 사람 곁에 서는 것이 더 용감한 일임을 코트 밖에서 증명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파이팅"을 외쳐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분들께 가장 먼저 권하고 싶습니다.
혹시 요즘 가슴이 좀 답답하다면, 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 곁에 있는 사람 등 한번 툭 쳐보시길 권합니다. 그게 생각보다 꽤 강력한 치어리딩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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