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에서 복권 당첨금이 연이어 미수령 상태로 쌓이던 2000년대 중반, 단 키슈 감독은 그 사회적 풍경에서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건져 올렸습니다. 영화 를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저거 저 사람들 얘기가 아닌데"라는 서늘한 감각이었습니다.허상 —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좇는 사람들영화의 원제는 '벽에 그려진 초록색 말(Și caii sunt verzi pe pereți)'입니다. 루마니아어 관용 표현으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헛된 환상'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목을 매는 상태, 그 자체를 제목으로 삼은 겁니다.영화는 두 개의 플롯을 교차시킵니다. 하나는 가짜 복권 사이트에 현혹된 청년 마리우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고, 다른 하나는 창고에 숨겨진 불법 약물로 한탕을..
잘 나가다 갑자기 아무것도 안 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도 한때 열심히 하던 일이 어느 순간 세상의 흐름과 어긋나버리는 경험을 했는데, 그때 우연히 접한 영화 한 편이 이상하게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일본 영화 입니다. 실패한 만화가가 강가에서 돌을 주워 팔기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웃기면서도 어딘가 묵직하게 찔려오는 작품이었습니다.강가의 돌을 파는 남자 — 미장센이 말하는 것한때 꽤 인기를 끌었던 만화가 스케조는 상업적 타협을 거부하다 결국 업계에서 완전히 잊힙니다. 고물상, 중고 카메라 판매 같은 엉뚱한 사업을 전전하다 모두 실패하고, 급기야 다마강 둔치에 오두막을 짓고 강가에서 주운 돌을 팔기 시작하죠. 저도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황당했습니다. '저게 팔린다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
아이의 책상 서랍 깊은 곳에서 낡은 스케치북을 꺼내든 순간, 저는 그동안 제가 얼마나 잔인한 '현실주의자'였는지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 안에는 아이슬란드의 오로라와 낯선 골목길 스케치가 빼곡했고, 옆에는 '언젠간 꼭 가야지'라는 글귀가 꾹꾹 눌러 적혀 있었습니다. 영화 는 바로 그날 밤 제가 느꼈던 먹먹함을 스크린 위에 고스란히 옮겨 놓은 작품입니다.몽상가 월터, 상상과 현실 사이에 갇히다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영화 포스터만 봤을 때는 그냥 가볍게 웃고 넘기는 어드벤처 코미디겠거니 했는데, 막상 초반 10분을 보고 나서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월터 미티(벤 스틸러 분)는 세계적인 사진 잡지 의 사진 필름 관리자입니다. 필름 관리자란 사진작가가 촬영한 원본 필름을 받아 현상·보관·전달하는..
아이가 며칠째 밥도 안 먹고 방 안에서 훌쩍거리고 있었습니다. 단짝 친구가 이사를 갔다는 이유 하나였는데, 저는 사흘을 버티다 결국 "사내자식이 쪼잔하게 친구 하나 이사 갔다고 언제까지 질질 짤 거야"라는 말을 뱉고 말았습니다. 1970년대 산동네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을 뒤늦게 보면서,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 돌덩이였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여민이라는 아이 — 가난이 키운 조숙한 도덕률영화의 주인공 백여민은 초등학교 3학년, 열 살이 채 안 된 아이입니다. 기성회비를 못 내 담임에게 손찌검을 당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동네 골목대장에게 찍혀 패싸움에 휘말린 친구 흑제비를 대신해 맨주먹을 날립니다. 그러면서도 학교가 끝나면 아이스케키를 팔아 돈을 항아리에 모읍니다. 목표는 단 하나, 한쪽 눈이..
잘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이게 정말 내가 원한 삶인가?" 하는 질문이 가슴을 치고 올라온 적 있으십니까. 저는 그 질문을 영화관이 아닌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먼저 받았고, 그로부터 몇 년 뒤 이 영화를 보며 비로소 그 질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2013년 개봉한 는 딱 그 질문 하나를 두 시간 내내 아름답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영화입니다.각성 — 지루한 노교수가 갑자기 열차에 뛰어오른 이유영화의 첫 장면부터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고전문화학 교수 그레고리우스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 다리 위에서 한 여인의 죽음을 막습니다. 여인은 사라지고, 그의 손에는 붉은 코트와 책 한 권, 그리고 15분 뒤 출발하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만 남습니다.평생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걸었던 이 완..
재작년 여름, 저는 폭우가 쏟아지는 고속도로에서 완벽하게 짜인 휴가 계획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운전대를 부서져라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그 기억을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뼈저리게 떠올렸습니다. 은 강아지 한 마리의 시선으로 인간 삶의 굴곡을 담아낸 영화인데, 카레이싱 철학이 삶과 이렇게 정밀하게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빗속 레이싱 — 통제할 수 없을 때 어떻게 달릴 것인가영화의 화자는 카레이서 데니의 반려견 엔조입니다. 엔조의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는 케빈 코스트너로, 그 묵직하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 자체가 이 영화의 절반을 책임집니다. 엔조는 말합니다. "비가 오는 트랙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다." 뛰어난 레이서는 차가 미끄러질 때 억지로 핸들을 꺾어 궤도를 통제하려 들지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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