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더 컨덕터 포스터
영화 '더 컨덕터'

"넌 왜 남들처럼 피아노나 안 치냐?" 딸아이가 학교 여자 축구부 주장을 하겠다고 했을 때, 제 입에서 그 말이 나왔습니다. 입으로는 남녀평등을 외치면서도 정작 제 딸 앞에 유리천장을 세우고 있었던 겁니다. 영화 <더 컨덕터>(2019)는 바로 그런 저의 낡은 잣대를 정면으로 박살 낸 작품입니다.



여성 지휘자 안토니아 브리코, 편견의 벽을 지휘봉으로 부수다

과연 '재능이 없어서' 기회를 못 받은 걸까요, 아니면 '기회를 주지 않아서' 재능을 증명할 수 없었던 걸까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그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영화는 실존 인물인 안토니아 브리코(Antonia Brico)의 일생을 다룹니다. 그녀는 190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세계 최초로 전문 지휘 교육을 이수한 여성 지휘자가 된 인물입니다. 극 중에서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은 '윌리 월터스'인데, 남장(male disguise)을 하고 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며 생계를 이어가는 장면은 당시 여성이 음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기묘한 우회로를 걸어야 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보면서 가장 오래 멈췄던 건 그녀가 거장 멘겔베르크(Mengelberg)에게 지휘를 가르쳐달라고 찾아가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는 "여자는 지휘를 할 수 없다"라며 돌려보내는 대신, 안토니아의 악보 독해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결국 "결혼이나 해라"는 말로 쐐기를 박습니다. 지휘자란 수십 명의 연주자를 통솔하는 포디엄(podium)의 자리, 즉 무대 지휘대에서 앙상블 전체의 음악적 방향을 결정하는 권위의 자리입니다.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그 자리를 허락하지 않은 건 음악적 능력과는 무관했습니다. "여자가 남자 위에 선다"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가부장적 폭력이었습니다.

안토니아는 멘겔베르크에게 거부당한 뒤 베를린으로 건너가 카를 무크(Karl Muck)에게 사사하고, 마침내 베를린 국립음악아카데미(Staatliche Akademische Hochschule für Musik) 지휘과에 합격합니다. 역사상 단 두 명만 뽑는 자리에, 여성으로는 최초였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느낀 건 단순한 감동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딸아이에게 했던 그 말이 바로 저 꼰대들과 똑같았구나"라는 소름 끼치는 자기 인식이었습니다.

  • 멘겔베르크(Mengelberg): 당대 네덜란드 최고의 지휘자. 안토니아에게 추천서를 써주었으나 동시에 여성 지휘자의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부정한 인물
  • 카를 무크(Karl Muck): 독일 지휘자. 전쟁 중 반미 발언으로 18개월 투옥된 경험을 가졌으며, 안토니아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 최초의 스승
  •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바흐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의사. 안토니아의 정신적 롤모델로 극 중 여러 차례 언급되며, 재능을 다른 방향으로 쓰는 것의 의미를 묻게 만드는 존재
요약: 안토니아 브리코의 지휘자 도전은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 여성에게 포디엄을 허락하지 않았던 시대 권력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습니다.

 

여성 오케스트라 창단, 편견에 대한 가장 우아한 답

기득권이 문을 잠가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토니아가 선택한 답은 자신만의 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안토니아는 공연 기회를 얻으려 하지만, 콘서트 매니저는 자리다 티켓의 절반을 선구매하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개런티(guarantee)도 없이 공연 리스크를 전부 연주자에게 떠넘기는 구조입니다. 쉽게 말해 "해보고 싶으면 네 돈 먼저 내라"는 뜻입니다. 남성 동료 지휘자들에게는 묻지도 않는 조건이었습니다.

결국 안토니아는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남성만 오디션을 받는다는 현실 앞에서 다른 길을 택합니다. 실직한 여성 연주자들을 모아 뉴욕 여성 심포니 오케스트라(Women's Symphony Orchestra of New York)를 창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직접 느낀 감동은 단순히 "여성끼리 뭉쳤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주자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이들, 그 각각의 좌절이 한 무대 위에서 앙상블(ensemble), 즉 조화로운 합주로 폭발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였습니다.

공연은 처음에 빈 좌석이 걱정될 만큼 외면받았습니다. 그러나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 여사가 오케스트라의 후원자(patron)로 나서면서 흐름이 바뀝니다. 후원자란 단순히 돈을 대는 사람이 아니라, 그 활동의 정당성을 공적으로 보증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퍼스트레이디의 공개 지지는 수천 명이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안토니아 브리코는 1938년 뉴욕 타운홀에서 1,500석을 매진시키며 여성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증명했습니다(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여성음악사 아카이브).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영화가 가장 강렬하게 꽂히는 건 후반부 지휘 장면이 아니라, 오히려 안토니아가 단원들 앞에서 악기를 빼앗긴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하루 연습을 빠지면 나만 안다. 이틀 빠지면 오케스트라가 안다. 사흘 빠지면 관객이 안다." 이건 지휘자와 연주자의 관계, 즉 마에스트로(maestro)가 앙상블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철학이기도 합니다. 마에스트로란 단순히 지휘봉을 흔드는 사람이 아니라, 100명의 음악적 자아를 하나의 유기체로 이끄는 총체적 리더를 뜻합니다. 그 자리가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씩씩거리며 붉어진 눈시울로 돌아온 딸아이를 보며, 오케스트라가 아닌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안토니아를 떠올렸습니다. 체육 선생님이 "여자애들이 모여서 축구해 봤자"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제 안의 잘못된 악보가 산산이 찢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부모가 세상보다 먼저 "안 돼"를 말하는 순간, 아이는 세상이 아닌 집에서부터 먼저 무너집니다.

여성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탄생 배경에는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는 시대적 맥락도 있었습니다. 대규모 실업 상태에서 남성 단원 우선 채용이 관행으로 굳어지면서, 실력 있는 여성 연주자들이 구조적으로 배제되었습니다. 이 점은 미국 음악인 연합(American Federation of Musicians) 관련 자료에서도 확인됩니다(출처: American Federation of Musicians 공식 역사 페이지).

요약: 안토니아의 여성 오케스트라 창단은 분노가 아닌 실력과 연대로 차별에 답한, 역사상 가장 우아한 반박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컨덕터는 실화인가요? 안토니아 브리코가 실제 인물인가요?

A. 맞습니다. 안토니아 브리코(1902~1989)는 실존 인물로, 세계 최초로 베를린 국립음악아카데미 지휘과에 입학한 여성입니다. 1938년 뉴욕 타운홀 공연을 매진시키며 여성 지휘자의 가능성을 실제로 증명했습니다. 영화는 그 일생을 기반으로 제작된 전기 드라마입니다.

 

Q. 영화에서 윌리 월터스가 안토니아 브리코의 본명인가요?

A. 극 중 안토니아는 어린 시절 입양된 뒤 '윌리 월터스'라는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홀랜드 출신의 입양아라는 설정이 실제 브리코의 출생 배경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 '안토니아 브리코'를 되찾는 과정은 정체성 회복의 서사로도 읽힙니다.

 

Q. 더 컨덕터에서 엘리너 루스벨트가 실제로 등장하나요?

A. 영화에서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는 직접 등장하지 않고 전화와 편지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역사적으로도 루스벨트 여사는 안토니아 브리코의 뉴욕 여성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실제로 후원했습니다. 영화는 이 사실을 극적으로 잘 살려냈습니다.

 

Q. 이 영화, 어린이나 청소년이 봐도 괜찮은가요?

A.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중학생 이상이라면 충분히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음악과 인간의 의지가 중심이라, 오히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누기에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 한 편이 긴 훈화보다 훨씬 더 깊이 남습니다.

 

결론

저는 이 영화를 본 뒤 딸아이의 어깨를 꽉 잡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틀렸어. 내일 아빠가 제일 먼저 응원 갈게. 운동장 한가운데서 실컷 뛰어." 그게 전부였습니다. 안토니아가 100명의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듯, 때로는 단 한 사람의 단단한 지지가 한 아이의 포디엄을 만들어줍니다.

<더 컨덕터>는 클래식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장르 안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평등과 의지를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음악을 모르더라도, 지휘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혹시 누군가의 꿈 앞에 유리천장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 하나를 품고 보시면, 마지막 지휘 장면에서 터지는 박수갈채가 화면 밖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dMM65Z3vi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