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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물루스 나의 아버지 포스터
영화 '로물루스 나의 아버지'

아내가 절친한 친구와 불륜을 저지르고, 정신이 무너져 결국 스스로 세상을 등집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숨을 참았습니다. 화면 속 로물루스의 거친 손등이, 몇 년 전 공원 벤치에서 차가운 캔커피를 쥐고 있던 제 손과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민자 아버지 로물루스, 세상의 기준으로는 완전한 실패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아버지란 가족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키고, 가정을 화목하게 지켜내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로물루스는 루마니아 출신 이민자로, 호주의 척박한 시골에서 날마다 땀을 쏟으며 살아갑니다. 이민자 정체성(diasporic identity)이란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존재 방식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서 매일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하는 삶입니다. 로물루스는 식당에서 대놓고 무시와 조롱을 당하면서도 아들 레이먼드 앞에서는 고개를 꼿꼿이 세웠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 크리스티나는 우울증(depression)을 앓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울증이란 단순한 의기소침이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가 전 세계 3억 명 이상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 심각한 정신건강 질환입니다(출처: WHO). 크리스티나는 결국 친한 친구 미트루와 불륜을 저지르고 아이까지 낳습니다. 로물루스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에게 어머니를 미워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노를 삼키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갉아먹히는지,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미트루마저 경제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크리스티나 역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쓰러집니다. 그 충격이 이어지자 로물루스 본인도 정신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결국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결정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보다 더 철저한 실패는 없습니다. 가난하고, 아내를 지키지 못했고, 정신마저 나가버렸으니까요.

그런데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실패한 것이 맞느냐"고요.

  • 로물루스는 아무리 가난해도 아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직접 몸으로 가르쳤습니다
  • 아내의 외도와 배신을 알면서도 아들 앞에서 어머니를 험담하지 않았습니다
  • 이방인으로서 받는 멸시와 조롱을 원망 대신 묵묵함으로 받아쳤습니다
  • 정신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스스로 도움을 구하러 병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요약: 로물루스는 물질적·사회적으로는 실패한 가장이었지만, 정직과 연민이라는 도덕적 나침반을 아들에게 온몸으로 새겨준 진짜 아버지였습니다.

 

부성애의 진짜 의미를 공원 벤치에서 배웠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성애(paternal love)는 강인하고 묵직한 보호 본능으로 표현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부성애란 자녀를 향한 아버지 고유의 애착과 헌신을 일컫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모성애와 구별되는 방식으로 자녀의 사회성과 자존감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연구자들은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하지만 제가 직접 겪어본 부성애는, 강인함보다 훨씬 더 초라하고 서툰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 갑작스러운 실직을 당했을 때, 저는 가족에게 그 사실을 숨겼습니다. 매일 아침 양복을 입고 나가 도서관과 공원을 전전하면서, 가장으로서의 체면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솔직히 그때 제가 가장 무서웠던 건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아들의 눈에 비치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돈을 못 버는 아버지"가 되는 순간, 제 권위도 아이의 존경도 한꺼번에 사라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공원 벤치에서 캔커피로 점심을 때우고 있던 제 앞에 학원을 마치고 돌아가던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숨을 곳도 없이 거짓말이 통째로 들켜버린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수치심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제 옆에 털썩 앉더니, 제가 쥐고 있던 차가운 캔커피를 빼앗아한 모금 마시고는 가만히 제 등을 쓸어내렸습니다. "아빠, 혼자 얼마나 힘들었어. 학원 안 다녀도 되니까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저는 그 투박한 한마디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영화 속 레이먼드가 정신병원에 갇힌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하게 끌어안으며 성장했던 것처럼, 제 아들도 초라한 아버지를 보고 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제 경험상,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곳을 봅니다.

에릭 바나(Eric Bana)는 이 영화에서 내면 연기(interior acting), 즉 대사보다 침묵과 표정, 몸짓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로물루스를 빚어냈습니다. 쉽게 말해 말 대신 거친 손등과 텅 빈 눈동자로 슬픔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연기입니다. 저는 그의 연기를 보면서, '완벽한 가장'이라는 무거운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더 정직한 아버지가 되는 길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광활하지만 황량한 호주 아웃백(Outback)의 풍광은 이 영화의 정서적 은유이기도 합니다. 아웃백이란 호주 내륙의 건조하고 인적이 드문 광야를 가리키는 말로, 외부인에게는 숨 막히는 고독이지만 그 안에서 사는 이에게는 삶 자체인 공간입니다. 자전거를 나란히 타고 달리는 로물루스와 레이먼드의 뒷모습이 그 황야를 배경으로 작게 사라져 가는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장면입니다.

요약: 진짜 부성애는 통장 잔고나 번듯한 명함이 아니라,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아이 곁에 솔직하게 서 있는 맷집 있는 존재감에서 비롯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로물루스 나의 아버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네, 실화입니다. 호주의 저명한 철학자 레이먼드 가이타(Raimond Gaita)가 자신의 아버지 로물루스와 함께했던 유년 시절을 기록한 회고록을 원작으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실화 영화는 각색 과정에서 극적 과장이 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날것의 사실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연출되었습니다.

 

Q. 에릭 바나가 로물루스 역을 맡았는데, 연기가 어떤가요?

A. 에릭 바나는 이전까지 강인한 영웅이나 액션 캐릭터로 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완전히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분노를 속으로만 삼키는 중년 이민자의 내면을 대사 없이 표정과 몸짓으로만 전달하는데,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연기가 수상 경력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깊다는 것이었습니다.

 

Q. 결말이 어둡지 않나요? 보고 나서 너무 우울할 것 같아서요.

A. 영화 전반은 분명 무겁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하지만 결말은 로물루스와 레이먼드가 모든 것을 잃고도 함께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영화는 보고 나서 슬프기보다 오히려 이상하게 단단해지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Q. 어떤 분께 특히 추천할 만한 영화인가요?

A. 저는 특히 경제적인 압박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 40대 전후의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자격은 안정적인 수입으로 증명된다고들 하는데, 이 영화는 그 믿음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물질이 아닌 정직하고 연민 어린 삶의 태도가 아이에게 가장 긴 유산이 된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결론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로물루스는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으로는 철저히 낙제점짜리 가장이었지만, 아들 레이먼드는 그를 평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훌륭한 학자이자 인간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역설이 가슴 한편을 계속 두드렸습니다.

제 경험상, 아이들은 부모의 통장 잔고보다 부모가 역경 앞에서 어떤 얼굴을 하는지를 더 오래 기억합니다. 진흙탕 같은 삶 속에서도 남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삶의 밭을 일구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이에게는 어떤 말보다 강한 언어가 됩니다. 저는 그날 공원 벤치에서 그것을 배웠고,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BB6swTGcO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