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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스페인 내전 직전, 한 아이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스승을 향해 돌을 던집니다. 영화 <마리포사>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장면에서 화면을 멈춰야 했습니다. 몬초의 뒷모습이 낯설지 않았거든요.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등이었습니다. 제 아이의 등이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이 빼앗은 것 — 마리포사가 담은 교육의 의미
영화는 1936년 갈리시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처음 학교에 가던 날, 꼬마 몬초는 교실 문 앞에서 도망쳐 산으로 숨어버립니다. 그때 형 안드레가 찾아와 다시 데려가고, 거기서 노교사 돈 그레고리오를 만나게 되죠.
돈 그레고리오는 몬초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대신, 세상 자체를 보여줍니다. 나비의 혀를 가리키며 "이걸 프로보시스(Proboscis)라고 한다"라고 가르쳐주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프로보시스란 나비가 꽃의 꿀을 빨아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나선형 관 모양의 기관으로, 평소에는 돌돌 말려 있다가 꽃 앞에서야 펼쳐집니다. 스승은 그 작은 신비를 아이의 눈높이에서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또 하나, 틸로노린코(Tilonorinco)라는 새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틸로 노린 코란 남미에 서식하는 정자조(亭子鳥)의 일종으로,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나뭇가지와 조약돌로 정교한 구조물을 짓는 새입니다. 스승은 이 새의 이야기를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행위가 얼마나 본능적이고 숭고한 것인지를 민초에게 가르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봤을 때, 교육이란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싶어 뒤통수가 서늘했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군부독재가 무너지고 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군대·귀족·교회로 이루어진 지배층의 권력은 여전히 강고했습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스페인 내전(1936~1939)은 약 50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고,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스트 세력이 승리한 뒤 40년간 군부독재가 이어졌습니다(출처: Encyclopædia Britannica). 영화는 그 격변의 바람이 작은 마을을 덮치기 직전까지를, 아이의 눈으로 천천히 담아냅니다.
돈 그레고리오를 연기한 배우의 눈빛은 지식인의 오만함이 완전히 걷어내진 얼굴입니다. 그 인자한 주름이 후반부에 파시스트들의 트럭에 실려 끌려가는 장면과 충돌할 때, 관객의 가슴 어딘가가 날카롭게 베입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잔잔한 전반부가 이렇게 잔인한 후반부를 만드는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 프로보시스(Proboscis): 나비의 나선형 빨대 기관. 영화의 상징적 소재이자 제목 '마리포사(Mariposa, 나비)'의 핵심 이미지
- 틸로노린코(Tilonorinco):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새. 스승이 몬초에게 심어준 '세상의 경이로움'을 대표하는 소재
- 스페인 내전(1936~1939): 공화파 vs 파시스트 세력의 내전.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자 모든 비극의 원인
- 이념적 전향 강요: 파시스트 점령 후 공화파 가족들이 생존을 위해 주변인을 공개적으로 고발·배신해야 했던 역사적 현실
저의 배신의 돌팔매질 — 마리포사가 건드린 아버지의 부끄러운 기억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을 꽤 괜찮은 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건 어지간하면 들어줬고, 억지로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몬초가 트럭을 쫓아 달리며 스승에게 돌을 던지는 장면을 보고 나서, 제 기억 속 어떤 장면 하나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제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 동네에 그림을 가르쳐주는 화가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방과 후마다 그 할아버지 작업실을 찾아가 들꽃 이름을 배우고, 구름 모양을 스케치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몬초가 스승에게 프로보시스와 틸로노린코를 배우던 것과 다르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그걸 전혀 몰랐습니다.
성공과 효율이라는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던 40대 초반의 저는 어느 날 아이를 억지로 수학 학원에 등록시키며 말했습니다. "그 할아버지 근처에 다시 가지 마. 당장 가서 이제 그림 안 그린다고 확실하게 말하고 와." 아이가 울며 매달렸지만, 저는 화를 냈습니다. 아이는 결국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할아버지랑 그림 그리는 거 시시해서 싫어요"라고 거짓말을 하고 돌아와 방에서 숨죽여 울었습니다.
그날 밤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수학 문제집을 풀던 작은 등을 보면서도, 저는 '현실이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습니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비겁한 논리였는지 압니다. 파시스트의 총칼에 굴복해 아이에게 배신을 강요했던 몬초의 부모처럼, 저도 성적과 성공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굴복해 아이가 맺었던 가장 순수한 관계에 억지로 돌을 던지게 만들었던 겁니다.
영화의 엔딩은 그래서 더 서늘합니다. 몬초는 트럭을 쫓아 달리며 어른들이 시킨 욕설을 외치다가, 마지막 순간 스승이 가르쳐준 "틸로 노린 코! 프로보시스!"를 절규하듯 내뱉습니다. 이 카타르시스(Catharsis), 즉 억눌린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정화의 순간은 배신인 동시에 스승의 가르침이 영혼에 각인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역설적인 장면입니다. 제 아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참 후에 알았지만, 아이는 그림 도구를 서랍 깊숙이 숨겨두고 혼자 계속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기억을 가슴 한편에 끝내 놓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출처: IMDb, Butterfly (1999)).
제 경험상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몬초의 부모도, 저도, 그저 무서웠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가장 순수한 것을 가장 먼저 희생시켰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마리포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직접적인 실화는 아닙니다. 스페인 작가 마누엘 리바스의 단편소설 「나비의 혀」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다만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 지지자들이 이웃에게 공개적으로 고발당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허구이지만 충분한 역사적 리얼리티를 담고 있습니다.
Q. 영화 제목 마리포사가 무슨 뜻인가요?
A. 마리포사(Mariposa)는 스페인어로 '나비'를 뜻합니다. 영화 속에서 스승 돈 그레고리오가 몬초에게 나비의 혀(프로보시스)를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비롯된 제목으로, 억압 없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순수한 지식과 교육을 상징합니다. 제가 보기엔 그 나비의 날개가 결말에서 완전히 꺾이지 않았다는 점이 이 영화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Q. 마리포사 결말에서 몬초가 욕을 하면서도 자연의 이름을 외치는 이유가 뭔가요?
A. 몬초는 부모의 강요로 스승에게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스승이 가르쳐준 틸로노린코와 프로보시스를 절규하듯 외칩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담긴 장면입니다. 생존을 위해 배신할 수밖에 없었다는 슬픔과, 그 배신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가르침만큼은 영혼에서 지울 수 없다는 역설적 고백입니다.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엔딩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 스페인 내전이 영화 배경으로 자주 쓰이는 이유가 있나요?
A. 스페인 내전(1936~1939)은 민주주의와 파시즘이 처음으로 정면충돌한 현대사의 분기점으로 평가받습니다. 약 50만 명의 사망자와 40년간의 프랑코 독재라는 결과는, 이념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 갈등을 다루는 영화에서 자주 소환되는 배경이 됩니다.
결론
마리포사를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가 말하는 건 결국 단순합니다. 이념이든 성적이든, 어른들의 두려움은 언제나 가장 순수한 것을 먼저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몬초가 스승에게 던진 돌의 무게가, 그날 제가 아이에게 건넨 말의 무게와 너무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제 세상이 강요하는 생존의 논리를 핑계로 아이가 발견한 마리포사의 날개를 꺾는 겁쟁이 어른이 되지 않으려 합니다. 늦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이 영화가 마음에 걸리는 분이라면, 단순히 스페인 내전 역사 영화로 보지 마시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던진 돌이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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