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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게린 포스터
영화 '베로니카 게린'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취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저는 조엘 슈마허 감독의 실화 영화 <베로니카 게린(Veronica Guerin, 2003)>을 보며 그 질문 앞에 오래 멈춰 섰습니다. 1990년대 더블린의 마약 조직 실태를 파헤치다 총탄에 쓰러진 기자 베로니카 게린의 이야기는, 스크린 너머로 제 안의 무언가를 아프게 건드렸습니다.



실화영화가 픽션보다 더 불편한 이유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막연히 '영웅 서사'를 기대했습니다. 불굴의 기자가 악당을 무너뜨리는 통쾌한 결말. 그런데 <베로니카 게린>은 처음부터 그 기대를 비틀어 버립니다. 주인공은 더블린 빈민가 골목에서 마약 주사를 공유하는 아이들 앞에 서고, 취재원에게 뺨을 맞고, 마약 조직 두목 존 길리건(John Gilligan)에게 폭행을 당한 직후에도 다시 노트북을 켭니다.

탐사보도(investigative journalism)란,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는 보도와 달리 은폐된 구조적 비리를 장기간 추적해 공론화하는 심층 저널리즘을 말합니다. 베로니카는 마틴 카힐(Martin Cahill), 일명 '더 제너럴(The General)'로 불리던 아일랜드 범죄 조직 수장부터 더블린 외곽의 마약 유통망까지, 당시 언론이 건드리기를 꺼렸던 범죄 생태계 전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압도적입니다. 총탄이 거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경고를 받은 직후 딱딱하게 굳은 표정, 아들 걱정에 입술을 파르르 떠는 장면. 저는 그 연기를 보면서 '영웅'이 아니라 '두려움을 품고도 계속 걷는 사람'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그런 사람이 진짜 무서운 법입니다.

요약: <베로니카 게린>은 탐사보도 기자의 영웅담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걷는 한 인간의 처절한 분투를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로 정직하게 담아낸 실화영화입니다.

 

탐사보도가 막히는 진짜 이유

영화에서 베로니카가 부딪히는 장벽은 총구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끈질긴 벽은 '시스템'이었습니다. 경찰은 증거가 없다며 손을 놓고, 국회의원은 기사가 나가자마자 소송을 언급합니다. 편집국은 법무팀 눈치를 봅니다. 정보를 쥔 취재원들은 "기록엔 올리지 말라"는 조건을 달고서야 입을 엽니다.

이런 구조는 비단 90년대 아일랜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Press Freedom Index)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전 세계 180개국 중 절반 이상이 언론 자유에 '어려움' 이상의 등급을 받았습니다(출처: Reporters Without Borders). 여기서 세계언론자유지수란, 각국의 취재 환경·법적 보호·기자 안전 등 다섯 가지 지표를 종합해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저널리즘이 얼마나 자유롭게 작동하는지를 가늠하는 국제 기준입니다.

영화 속 베로니카가 마약 밀매상 존 트레이너(John Traynor)를 중간 고리로 삼아 조직의 자금 흐름을 역추적하는 장면은, 취재의 본질이 결국 '돈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진실을 막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폭력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 마틴 카힐 등 조직 수장들의 자금 세탁 구조를 추적
  • 존 길리건의 설명 불가 재산(암스테르담 카지노 자금 세탁, 승마 센터 등) 포착
  • 더블린 마약 유통망과 미성년자 활용 실태 보도
  • 경찰·정치권의 묵인 구조를 지면에 명시
요약: 탐사보도를 막는 진짜 벽은 총구가 아니라 시스템 안에 촘촘히 깔린 이해관계이며, 베로니카는 자금 흐름을 역추적하며 그 벽을 한 겹씩 걷어냈습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베로니카를 겁 없는 사람으로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존 길리건에게 구타를 당한 직후, 그녀는 차 안에서 혼자 오래 울었습니다. 아들이 납치될 수 있다는 협박 전화를 받은 뒤에는 남편에게 달려가 떨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무한테도 내가 이랬다고 말하지 말아 줘"라고 속삭이고는, 다음 날 다시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제 아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힘없는 친구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교장실에 가겠다고 했을 때, 저는 불같이 말렸습니다. "괜히 엮이면 네가 타깃 된다. 못 본 척해." 조직 내 평판과 안전제일주의에 갇혀 있던 40대 가장의 반응이 딱 그랬습니다.

며칠 뒤 아이는 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장실을 찾아갔고, 입술을 떨면서 저한테 말했습니다. "아빠, 가만히 있으면 그 친구는 계속 맞잖아. 무섭지만 그건 틀린 거니까 말해야 했어." 베로니카가 두려움보다 더 큰 양심을 짊어질 줄 알았던 것처럼, 제 아이도 그랬습니다. 그날 저는 아이를 꽉 껴안고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제 경험상, 용기란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두려움을 알면서도 내딛는 한 걸음입니다.

요약: 베로니카 게린의 용기는 무감각이 아니라 충분히 두려워하면서도 다음 날 다시 걷는 것이었고, 그 모습은 제 아이를 통해 현실에서도 확인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법을 바꾸다

1996년 6월 26일, 베로니카 게린은 더블린 외곽 나스 로드(Naas Road)에서 신호 대기 중 오토바이를 탄 총격범의 총탄 여섯 발을 맞고 숨졌습니다. 브라이언 미한(Brian Meehan)은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유진 홀랜드(Eugene Holland)는 마약 밀매 혐의로 20년 형을 받았습니다. 존 길리건은 영국에서의 긴 범죄인 인도 절차 끝에 아일랜드로 송환되어 마약 밀매 혐의로 28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아일랜드 국민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주간 반마약 행진을 이어갔고, 그 분노는 의회를 움직였습니다. 아일랜드 정부는 그녀의 사망 직후 긴급 의회 회기를 열어 헌법을 개정, 범죄 수익 동결을 가능하게 하는 고등법원 권한을 신설했습니다.

같은 해 범죄자산국(CAB, Criminal Assets Bureau)이 설립되었습니다. CAB란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자의 설명 불가한 재산을 형사 유죄 판결 없이도 압류·몰수할 수 있도록 한 아일랜드의 특수 기구로, 범죄 조직의 경제적 기반을 직접 타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는 당시 유럽에서도 선도적인 형사사법 개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아일랜드 법무부 공식 자료에 따르면, CAB 설립 이후 더블린의 마약 밀매 조직들은 눈에 띄게 지하로 잠적했습니다(출처: 아일랜드 법무부).

제가 이 결말을 보며 느낀 것은 카타르시스보다 무거운 무언가였습니다. 베로니카는 자신의 죽음이 이 모든 걸 바꿀 거라는 걸 알고 목숨을 던진 게 아닙니다. 그냥 오늘도 내일도, 진실을 향해 걸어갔을 뿐입니다. 그 축적이 결국 법을 뒤흔든 것입니다.

요약: 베로니카 게린의 죽음은 아일랜드 헌법 개정과 범죄자산국(CAB) 설립을 이끌어내며, 개인의 용기가 제도를 바꿀 수 있음을 역사로 증명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베로니카 게린은 실화 인물인가요, 영화 속 캐릭터인가요?

A. 실존 인물입니다. 베로니카 게린은 아일랜드 일간지 선데이 인디펜던트(Sunday Independent)에서 활동했던 실제 탐사보도 기자로, 1996년 더블린 외곽 나스 로드에서 암살되었습니다. 영화는 그녀의 취재 과정과 죽음, 그리고 그 여파로 일어난 법 개정까지를 실화 기반으로 재현했습니다.

 

Q. 영화 속 존 길리건은 실제로 처벌받았나요?

A. 네, 처벌받았습니다. 존 길리건은 베로니카 게린 암살과 관련해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영국에서의 긴 범죄인 인도 절차를 거쳐 아일랜드로 송환된 뒤 마약 밀매 혐의로 28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범죄자산국(CAB)에 의해 그의 재산도 압류·몰수되었습니다.

 

Q. 범죄자산국(CAB)이 왜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A. 기존 형사사법 체계는 범죄를 입증해 유죄 판결을 받아야만 재산을 압류할 수 있었습니다. CAB는 형사 유죄 판결 없이도 설명되지 않는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 범죄 조직의 돈줄을 직접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당시 유럽에서도 선도적인 입법 사례로 꼽혔습니다.

 

Q. 이 영화, 자녀와 함께 봐도 괜찮을까요?

A. 마약 복용 장면, 폭행·총격 등 강렬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어 초등 저학년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다만 중·고등학생 이상이라면 탐사보도의 의미, 사회적 불의에 맞서는 용기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먼저 보고,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결론

<베로니카 게린>을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든 장면은 총격도, 법정도 아니었습니다. 폭행당한 직후 차 안에서 혼자 울다가, 남편에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줘"라고 속삭이고는 다음 날 다시 취재를 나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게 진짜 용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계기로, 아이에게 '안전'을 빌미로 불의 앞의 침묵을 강요했던 제 과거를 뼈아프게 돌아봤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세상의 어둠 앞에서 촛불을 들고 나갈 때, 그 옆에서 비바람을 함께 막아주는 쪽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이 시작점이 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7JKandl8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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