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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 리뷰 (혈연정상가족, 진짜 사랑, 저녁 식탁)

by viewpointlife 2026. 4. 8.

어느 가족 포스터
영화 '어느 가족'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섯 명이 세상 어떤 가족보다 따뜻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을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40대 가장으로서, 등본에 이름 나란히 올려놓은 것만으로 '진짜 가족'이라 믿어온 제 안이함이 그대로 들켜버린 기분이었습니다.

혈연정상가족이라는 신화, 그리고 균열

한국 사회에서 '정상가족(Normal Family)'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강고합니다. 정상가족이란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모델을 말합니다. 이 틀 바깥에 있는 관계는 종종 '비정상'으로 분류되거나, 적어도 설명이 필요한 예외 취급을 받습니다.

실제로 2023년 여성가족부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10명 중 약 7명은 여전히 "가족이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관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출처: 여성가족부). 숫자로 보면 수십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신화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어느 가족〉은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영화 속 오사무네 가족은 법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 하쓰에는 버려진 낯선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노부요는 학대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린의 팔을 조용히 감싸 줍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제가 두 딸아이에게 마지막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게 언제였는지 떠올리려다 금방 멈춰버렸습니다. 쉽게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가 반드시 따뜻하지 않다는 사실, 저는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짜 가족이 진짜 사랑에 더 가까웠던 이유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장면은 여름 바닷가 장면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뛰어노는 동안, 할머니 하쓰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입을 움직입니다. "다들 고마웠어." 저는 그 장면에서 무언가가 턱 막혔습니다. 그 감사가 혈연이나 의무에서 나온 게 아니라, 순전히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선택적 친족 관계(Chosen Family)'라고 부릅니다. 선택적 친족 관계란 혈연이나 법적 결합 없이도 정서적 유대와 상호 돌봄을 기반으로 형성된 가족 같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미국심리학회(APA)의 연구에 따르면, 선택적 친족 관계에서 형성된 정서적 안정감은 생물학적 가족 관계에서 얻는 것과 심리적 효과 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를 지킨 방식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쇼타는 린이 위험에 처하자 자신이 미끼가 되어 달아납니다. 자기 몸을 먼저 내던졌습니다.
  • 노부요는 오사무에게 또 다른 전과가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 모든 죄를 뒤집어씁니다.
  • 오사무는 죽은 아이의 이름을 쇼타에게 붙여 부르며, 그 아이를 자신의 일부로 끌어안습니다.
  • 할머니 하쓰에는 자신이 혼자 산다는 사실을 숨기고 이 가짜 가족 전체를 연금으로 부양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이들의 선택이 전혀 '가짜'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진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도 신고 한 번 안 했던 린의 친부모보다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운 가족처럼 보였습니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의 관점에서 보면 이 차이는 더욱 뚜렷해집니다. 애착 이론이란 인간이 생애 초기에 주 양육자와 형성하는 정서적 유대가 이후 전반적인 관계 방식을 결정한다는 발달심리학 이론으로, 존 볼비(John Bowlby)가 체계화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양육자의 생물학적 관계가 아니라 '일관되고 반응적인 돌봄'입니다. 린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은, 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 먼저 사과해야 하는 환경에 길들여졌음을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버릇없음'의 반대가 아닙니다. 굉장히 마음이 아픈 신호입니다.

진짜 사랑

오늘 저녁 식탁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한 편이 서랍 깊숙이 묵혀 두었던 가족관계증명서 한 장의 무게를 이렇게 다시 생각하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두 딸아이를 낳았고, 매달 생활비를 벌어오고, 물리적인 울타리를 제공합니다. 그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꽤 괜찮은 아빠라고 믿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오사무는 아이에게 도둑질을 가르친 어른입니다. 도덕적으로는 처참히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쇼타에게 결국 '진짜 아빠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쇼타가 마지막에 버스 창밖으로 "아빠"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장면, 오사무는 듣지 못했지만 저는 들었습니다. 그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가족 기능(Family Func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가족 기능이란 가족 구성원이 서로에게 정서적 지지, 경제적 협력, 사회화 등을 제공하는 역할의 총체를 의미하는 가족사회학 용어입니다. 혈연이나 법적 지위가 아닌, 실제로 이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가 진짜 가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어느 가족〉은 바로 그 기준으로 봤을 때, 범죄자 집단이 법적 보호자보다 훨씬 우월한 가족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나서 "재밌었다"로 끝낼 수 있는 종류의 영화가 아닙니다. 며칠 동안 머릿속에 남아서 자꾸 무언가를 되묻게 만듭니다. 아이와 마지막으로 눈을 맞춘 게 언제인지, 배우자의 말을 진심으로 들은 게 언제인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함으로 포장된 무관심은 없었는지.

〈어느 가족〉을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서 어딘가 엇나가는 느낌이 드는 분이라면 지금 바로 보시길 권합니다. 등본 한 장이 아니라, 오늘 저녁 식탁에서 어떤 눈빛을 건네느냐가 가족을 만든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아주 조용하고도 단단하게 말해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dc8x9wX2-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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