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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포스터
영화 '신의 손'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현대 심장외과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 의사 면허조차 없는 흑인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1944년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비비안 토마스와 알프레드 블레이락이 함께 개척한 청색증(Blue Baby Syndrome) 수술은 오늘날까지 심장외과의 근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은 수십 년간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인종차별의 벽 앞에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천재는 결국 인정받는다'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현실은 훨씬 더 가혹하고 느립니다. 비비안 토마스가 딱 그랬습니다. 1930년대 미국 남부 내슈빌에서 목수로 일하던 그는 대공황의 여파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위해 모아둔 전 재산마저 한순간에 날아갔고, 결국 외과 의사 알프레드 블레이락 교수의 연구소에서 청소부 겸 조수로 일을 시작합니다.

문제는 1940년대 볼티모어였습니다. 당시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흑인은 뒷문으로만 출입할 수 있었고, 청소부나 하급 노동자로만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비비안은 가운을 입고 연구소에서 일했습니다. 백인 연구자들도, 흑인 동료들도 그 광경을 낯설어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뼈아프게 느낀 장면이 바로 이 부분이었는데, 그가 속한 어느 집단도 그를 '제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블레이락 박사는 비비안의 손에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본격적인 수술 보조와 실험 연구를 맡겼습니다. 여기서 '수술 보조(Surgical Technician)'란 단순히 기구를 건네는 역할이 아니라, 절개·봉합·지혈 등 수술의 핵심 술기를 집도의 옆에서 직접 수행하는 고도의 기술직을 의미합니다. 비비안은 실질적으로 외과 의사의 역할을 해냈지만, 그에게 붙은 직함은 어디까지나 '조수'였습니다.

  • 존스 홉킨스 병원은 1889년 설립 이후 미국 의학 연구의 중심으로, 민권법 이전 시대에는 철저한 인종 분리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 비비안은 공식 직함과 임금이 일반 흑인 청소부와 동일한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음을 인사 서류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됩니다
  • 블레이락 박사는 이 사실을 지적받고 나서야 비로소 비비안의 월급을 64달러에서 89달러로 인상합니다
요약: 비비안 토마스는 의사 면허도, 공식 직함도 없이 미국 최고 의학 기관에서 실질적인 외과 연구를 수행했지만, 제도는 그를 청소부와 같은 등급으로 묶어두었습니다.

 

청색증 수술, 역사를 바꾼 그 손이 사진에서 잘렸다

소아과 의사 헬렌 타우식은 블레이락 박사에게 선천성 심장 기형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외과적 해결책을 요청했습니다. 여기서 '청색증(Cyanosis)'이란, 심장 구조에 이상이 생겨 혈액 내 산소 공급이 극도로 부족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아이가 피부와 입술이 파랗게 변하며 조금만 움직여도 기절할 만큼 산소가 결핍되는 치명적인 병입니다. 당시에는 수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블레이락과 비비안은 수백 번의 동물 실험을 반복하며 수술법을 개발했고, 제가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블레이락 박사가 수술실에서 막힐 때마다 비비안에게 "어떻게 했었지?"라고 묻는 장면이었습니다. 실제 수술의 근간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그 한 마디로 명확해집니다.

1944년 11월, 존스 홉킨스 수술실에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려는 의사들이 가득 찼습니다. 블레이락 박사는 수술 직전 비비안을 급히 불러들였고, 수술실에 흑인이 들어오자 최고참 교수가 제지하려 했지만 박사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수술 중 출혈 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비비안의 손이 그것을 잡아냈습니다.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후가 문제였습니다. 잡지에 실릴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 비비안은 빠졌습니다. 블레이락-타우식 수술(Blalock-Taussig Shunt)이라 명명된 이 수술법의 공식 명칭에도, 발표 논문에도 비비안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여기서 '블레이락-타우식 단락술(Blalock-Taussig Shunt)'이란 폐동맥과 쇄골하동맥을 인위적으로 연결해 산소 공급량을 늘리는 수술법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도 선천성 심장 기형 치료의 기본 원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출처: Johns Hopkins Medicine).

비비안은 박사의 수술 성공을 축하하는 만찬장에도 호텔 직원으로 위장해서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감사 인사가 쏟아지는 그 자리에서 그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불리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장면이었습니다.

요약: 블레이락-타우식 단락술은 비비안 토마스의 손과 연구 없이는 탄생하지 못했지만, 역사의 공식 기록은 그를 지웠습니다.

 

35년 뒤, 존스 홉킨스가 그의 초상화를 걸었다

일반적으로 '억울함은 분노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 그게 솔직한 첫 반응이기도 합니다. 비비안도 실제로 연구실을 박차고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15년간 쌓아온 연구 경력을 인정받아 의대에 진학하려 했지만, 대학 측은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30대 중반이 된 그에게 세상이 내민 답은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비안은 결국 연구실로 돌아갔습니다. 분노에 먹혀 스스로를 파괴하는 대신, 후학을 양성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뒤로 30년 넘게 존스 홉킨스에서 외과 의사들을 가르쳤고, 그에게 배운 수련의들은 훗날 미국 심장외과의 주요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에 잠겼습니다. 시스템이 자신을 배신했음에도, 그 시스템 안에서 다음 세대를 키우는 선택을 한다는 게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훨씬 더 긴 호흡의 투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이 통과되었습니다. 여기서 민권법이란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 국가에 따른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연방법 차원에서 금지한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입법 중 하나입니다(출처: U.S. National Archives). 그리고 1976년, 존스 홉킨스 대학은 비비안 토마스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습니다. 그의 나이 65세였습니다. 이후 그의 초상화는 블레이락 박사의 초상화 바로 옆에 나란히 걸렸습니다. 의사 면허도 학위도 없이 심장외과의 역사를 바꾼 사람의 얼굴이, 35년 만에 공식적인 자리를 얻은 것입니다.

영화에서 앨런 릭먼이 연기한 블레이락은 평면적인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아닙니다. 비비안의 천재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지만, 사회적 시선 앞에서 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주저했던 복합적인 인간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캐릭터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완전히 나쁜 사람보다, '좋은 의도를 가졌지만 비겁했던 사람'이 실제로 더 많은 피해를 만들어낸다는 걸 살면서 종종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요약: 비비안 토마스는 분노 대신 후학 양성을 선택했고, 35년 후 존스 홉킨스는 그의 초상화를 블레이락 박사 옆에 나란히 걸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비비안 토마스는 실제 인물인가요?

A. 네, 실존 인물입니다. 1910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태어난 비비안 토마스는 의사 면허 없이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30년 이상 외과 연구와 후학 양성에 헌신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수술의 공로가 블레이락과 타우식에게만 돌아간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비비안의 동물 실험과 수술 기법 개발이 없었다면 1944년의 성공은 불가능했습니다.

 

Q. 블루 베이비 증후군이 정확히 어떤 병인가요?

A. 블루 베이비 증후군은 선천성 심장 기형으로 인해 산소가 부족한 혈액이 전신으로 돌면서 피부와 입술이 파랗게 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의학적으로는 청색증(Cyanosis)이라고 부르며, 팔로 4징증(Tetralogy of Fallot)이 대표적인 원인 질환입니다. 1940년대 이전에는 사실상 치료법이 없어 조기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Q. 영화 제목 '신의 손'이 어디서 나온 표현인가요?

A. 블레이락 박사가 비비안의 수술 봉합 솜씨를 처음 보고 "마치 신이 이 손을 만든 것 같다"는 취지로 경탄하며 내뱉은 말에서 비롯된 영화의 원제입니다. 인간이 만든 인종 차별 제도보다, 비비안의 손끝에 깃든 재능이 훨씬 위대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담아낸 한 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비비안 토마스는 결국 의사 자격을 얻었나요?

A. 정규 의대를 졸업한 의사 면허는 끝내 취득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1976년 존스 홉킨스 대학은 그의 평생에 걸친 연구·교육 공로를 인정해 명예 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명예학위는 상징적인 수준에 그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비비안의 경우는 30년 넘는 실질적 기여에 대한 뒤늦은 공식 인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릅니다.

 

결론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재능의 증명'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비비안 토마스는 세상이 요구하는 형식, 즉 학위나 면허 없이도 심장외과의 역사를 바꾸는 수준의 일을 해냈습니다. 그런데도 그 공로는 수십 년간 공식적으로 지워졌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학벌, 출신, 나이, 외모라는 낡은 잣대 때문에 진짜 재능이 그림자 속에 가려지는 경우는 여전히 많습니다. 이 영화가 1940년대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 영화가 궁금하다면, 먼저 '블레이락-타우식 단락술'을 검색해 실제 의학사를 확인하고 나서 영화를 보시길 권합니다. 픽션이 아닌 팩트를 먼저 알고 보면, 화면 속 장면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KFIRaB3i_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