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청색증 수술의 역사'를 백인 의사 혼자 써 내려갔다고 막연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 안에 꽤 오래 숨어 있던 부끄러운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재작년 어머니 칠순 잔치에서 저 혼자 박수를 독식했던 그 밤 이야기입니다.
지워진 이름, 지워지지 않은 공헌
1930년대 미국 내슈빌. 흑인 청년 비비언 토마스는 목수 출신으로 밴더빌트 대학 산하 실험실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천부적인 손재주와 관찰력을 알아본 외과의사 알프레드 블레이락은 그를 단순 잡역부가 아닌 실험 조수로 곁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시아노틱 하트 디지즈(Cyanotic Heart Disease), 즉 선천성 청색증 심장 질환을 치료하는 수술법의 탄생 과정입니다. 시아노틱 하트 디지즈란 심장의 구조적 기형으로 인해 산소가 부족한 혈액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피부가 파랗게 변하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질환을 말합니다. 당시 의학계는 이 아이들을 '블루베이비'라 불렀고,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비언은 이 수술의 가능성을 동물 실험으로 하나씩 증명해 나갔습니다. 기존 수술 도구로는 불가능했던 미세한 혈관 문합(吻合) 작업, 즉 두 혈관을 이어 붙이는 봉합 기술을 위해 그는 직접 새로운 수술 기구를 제작했습니다. 여기서 혈관 문합이란 서로 다른 두 혈관 또는 조직을 절개하고 연결하여 혈액이 정상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이어주는 외과적 처치를 의미합니다. 목수로서 갈고닦은 손의 감각이 수술실에서 그대로 살아난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유독 오래 멈췄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비비언이 새벽까지 불을 켜고 실험을 반복하는 동안, 그의 이름은 어느 논문에도 기재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저자 기여도(Authorship Credit), 즉 논문이나 연구 성과에서 실제 기여한 사람이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리는 권리가 철저히 박탈된 것입니다. 오늘날 연구 윤리의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위반이지만, 당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은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944년 첫 번째 블루베이비 수술 성공 이후, 전국에서 수백 명의 환아와 가족이 존스 홉킨스로 몰려들었습니다. 세상의 박수는 오직 블레이락에게로 쏟아졌고, 비비언은 그 화려한 축하 만찬에 초대장조차 받지 못한 채 어두운 복도를 걸어나가야 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손발이 저려왔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블레이락과 비비언, 두 시선으로 보는 협업의 민낯
이 영화를 두고 "블레이락을 너무 인간적으로 그린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분명 블레이락은 비비언의 공헌을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반면 "그 시대의 한계 안에서 비비언을 최대한 보호하고 지원하려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두 시각 모두 일부분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블레이락이 비비언에게 인종차별적 언행을 서슴지 않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흑인에게 '연기 드럼'을 들이밀며 조롱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비비언이 격분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하자, 블레이락은 처음으로 자신이 선을 넘었음을 인정합니다. 이 장면이 저에게는 단순한 화해의 장면이 아니라, 특권적 무의식(Unconscious Privilege)이 드러나는 순간으로 읽혔습니다. 특권적 무의식이란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집단이 스스로의 특권을 인지하지 못한 채 타자를 비하하는 언행을 반복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어머니 칠순 잔치 당일, 저는 양복 깃을 세우고 건배사를 주도하며 친척들의 칭찬을 온몸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잔치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소파에 쓰러진 아내의 부르튼 입술을 보고서야 비로소 제가 얼마나 오만하게 공헌을 독식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예약부터 선물 선택, 친척 어른 시중, 아이들 달래기까지 모든 '수술'은 아내가 했고, 저는 마이크만 잡은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 우리는 성과를 나눌 때 실제로 기여한 사람에게 정당한 크레딧을 주고 있는가?
- '당연히 하는 역할'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헌신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 협업의 결과물을 독식하면서도 스스로를 '공정한 사람'이라 믿고 있지는 않은가?
인종차별이라는 극단적인 구조 속에서 비비언의 이야기를 보며, 저는 제 일상 속에 훨씬 작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비비언 지우기'를 발견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것, 그리고 우리의 선택
비비언 토마스는 1976년,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의대를 다닌 적도 없는 그가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공식적으로 의학계에서 인정받은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직접 가르친 수많은 외과 레지던트들은 훗날 세계적인 심장외과 전문의로 성장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비비언 토마스가 없었다면 저도 없었다"라고 회고했습니다(출처: 존스 홉킨스 메디신).
수술 성공 이후 비비언의 초상화는 존스 홉킨스 의대 복도에 걸렸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장식이 아닌 이유는, 그 복도에 걸린 초상화들이 모두 '의학 박사(M.D.)'들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M.D. 란 정규 의학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면허를 취득한 의사 자격을 의미합니다. 의대를 졸업하지 않은 흑인 기술자의 초상화가 그 자리에 걸린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NLM)은 비비언 토마스를 20세기 심장외과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로 공식 기록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그의 이야기는 단지 흑인 차별의 역사에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모든 협력자들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날 밤 잠든 아내의 손을 꽉 쥐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수없이 사과하며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집에 찾아오는 모든 영광의 순간에는, 제가 가장 먼저 그 스포트라이트를 아내와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비비언 토마스의 초상화가 마침내 그 자리에 걸린 것처럼, 진짜 공헌은 결국 외면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 영화는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증명해 보입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오늘 저녁 한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다 보고 나서 거실을 둘러보면, 지금 옆에서 묵묵히 당신의 빈틈을 채워주고 있는 사람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