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감정보다 논리가 우월하다고 믿었습니다.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 설명해 봐"라고 다그쳤고, 쉬운 동화책 대신 두꺼운 고전을 억지로 쥐여줬습니다. 그런 제가 영화에서 비비안 베어링 교수를 보며 온몸이 굳어버렸습니다. 스크린 속 그녀가 바로 저였기 때문입니다.
지성의 한계 — 차가운 이성이 쌓아 올린 벽
마거릿 에드슨의 퓰리처상 수상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 는 비비안 베어링이라는 17세기 영문학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존 던(John Donne)의 형이상학적 시(Metaphysical Poetry)를 평생 연구한 권위자입니다. 형이상학적 시란 17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문학 사조로, 죽음·영혼·신을 극도로 정교한 지적 논리와 역설로 풀어낸 시 장르를 가리킵니다. 비비안은 그 복잡한 죽음의 철학을 머릿속에 가득 담고 살았지만, 정작 자신이 말기 난소암 선고를 받는 순간 그 모든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감각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압니다. 몇 년 전 겨울, 며칠째 고열과 몸살로 안방 침대에 쓰러졌을 때입니다. 저는 집안에서 늘 "논리와 이성"을 앞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눈물을 감상이라 여겼고, 감정 표현을 나약함으로 치부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완전히 고장 나자, 그 알량한 이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영화 속 비비안도 똑같습니다. 그녀를 담당한 젊은 의사 제이슨은 과거 그녀의 제자였는데, 죽어가는 스승에게 보이는 관심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암세포의 증식 메커니즘, 즉 악성 신생물(Malignant Neoplasia)의 분열 데이터뿐입니다. 악성 신생물이란 정상적인 세포 증식 제한을 무시하고 끝없이 분열하는 암세포를 의미하는 의학 용어입니다. 제이슨은 그 불멸에 가까운 세포 증식 패턴을 "awesome"이라 말할 만큼 연구에 도취되어 있습니다. 비비안이 학생들을 '학문적 평가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듯, 제이슨은 비비안을 '임상 데이터'로만 취급합니다. 이 잔인한 데칼코마니를 영화는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보여줍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의학연구소(IOM)는 2001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란 기술적 전문성과 함께 환자 중심의 공감적 소통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출처: National Academy of Medicine). 탁월한 연구 역량만으로는 온전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의료 현장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이성만으로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결국 벽 앞에 혼자 서게 됩니다.
비비안이 평생 연구한 존 던의 대표 소네트인 '거룩한 소네트(Holy Sonnet)'는 죽음을 논리와 위트(Wit)로 압도하려는 시입니다. 위트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날카로운 지적 역설과 논증 능력을 뜻하는 개념입니다. "Death, be not proud(죽음이여, 교만하지 마라)"라는 첫 구절은 죽음조차 지성으로 굴복시키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비비안은 극심한 통증 앞에서 그 위트가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몸으로 배워야 했습니다. 저도 그날 밤, 40년 넘게 쌓아 올린 이성의 탑이 7살 막내딸의 손 하나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무너짐과 사랑의 구원 — 동화책 한 권이 한 사람을 구한 방식
영화의 가장 깊은 울림은 마지막 장면에 있습니다. 죽어가는 비비안을 찾아온 늙은 스승 애쉬포드 교수는 가방에서 존 던의 시집 대신 어린이 그림책을 꺼냅니다. "네가 어디로 도망가든, 엄마는 끝까지 따라갈 거야. 너는 내 아기니까." 그 단순한 문장 하나에, 평생을 지적 갑옷으로 무장했던 비비안의 얼굴이 처음으로 평온해집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보며 울었습니다. 아이가 저에게 읽어주던 바로 그 동화책, 제가 "유치하다"며 핀잔을 주던 그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막내딸은 다 해진 책을 더듬더듬 소리 내어 읽어주었고, 저는 아이의 작은 손을 꽉 쥐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게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똑똑한 아빠"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순간이었습니다.
영화는 임종 직전 혼수상태의 비비안에게 제이슨이 심폐소생술(CPR), 즉 심정지 상태의 환자에게 흉부 압박과 인공호흡을 통해 혈액순환을 유지하려는 응급 처치를 시도하는 장면을 넣습니다. 비비안은 이미 소생불가(DNR, Do-Not-Resuscitate) 지시를 남겼습니다. DNR이란 환자가 심정지 등 임종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심폐소생술 등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사전에 결정하는 의향서를 말합니다. 그러나 제이슨은 그녀를 사람이 아닌 '연구 데이터'로 보았기에 그 의사를 본능적으로 무시합니다. 간호사 수지가 막아서고서야 비로소 멈춥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에게 DNR 같은 짓을 해왔던 것 아닌가 하고요. 아이가 "지쳤어요, 그냥 쉬고 싶어요"라고 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논리와 성과라는 이름의 전기충격을 계속 가했던 건 아닌가 하고요.
영화를 보며 이 작품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성과 논리는 죽음 앞에서, 고통 앞에서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
- 타인을 평가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자신 역시 같은 방식으로 취급받게 된다
- 인간을 온전히 구원하는 것은 복잡한 학문이 아니라 무조건적이고 단순한 사랑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임종 직전 환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의학적 처치보다 곁에 있어주는 인간적 존재감과 신체 접촉이라는 결과가 일관되게 나타납니다(출처: WHO Palliative Care). 비비안이 수지 간호사에게 "You're still going to take care of me, aren't you?"라고 물었을 때, 그 눈빛에 담긴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멍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이성적인 아버지상이, 사실은 아이들에게 가장 차가운 벽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권하고 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늘 "논리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분, 감정 표현을 나약함으로 여기는 분, 그리고 오랫동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정작 손 한 번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분들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분석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더 위대한 지성임을 뭉클하게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