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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리 앤 줄리아 리뷰 (도전, 마흔의 시작, 웃음의 순간)

by viewpointlife 2026. 5. 27.

줄리&줄리아 포스터
영화 '줄리 & 줄리아'

주말 아침, 가족들 앞에서 근사한 요리를 선보이려다 주방을 전쟁터로 만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얼마 전 그 창피함을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우연히 튼 영화 한 편에서, 제가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던 그 기분을 스크린 위의 누군가가 먼저 살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 이야기입니다.

퇴근 후 좁은 주방에서 시작된 도전

영화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반세기의 시간 차를 두고 교차 편집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교차 편집이란 서로 다른 시간대나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며 두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영화 기법입니다. 1949년 외교관 남편을 따라 파리에 도착한 줄리아 차일드와, 반세기 뒤 뉴욕 퀸즈의 피자가게 위 좁은 집에서 블로그를 시작하는 줄리 파월. 두 사람의 출발점은 다르지만, 삶이 자신의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막막함만큼은 똑같습니다.

줄리 파 Powell은 작가의 꿈을 접고 공무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중, 남편의 권유로 블로그를 시작합니다. 목표는 요리연구가 줄리아 차일드의 레시피 524개를 정확히 1년 안에 모두 완성하는 것. 마스터링 더 아트 오브 프렌치 쿠킹(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이라는 이 책은 복잡한 프랑스 요리를 미국 가정에서도 재현할 수 있도록 풀어쓴 요리 바이블로, 줄리아 차일드가 8년에 걸쳐 완성한 역작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설정이 얼마나 무모한지 바로 느껴졌습니다. 저도 어느 주말 아침 유명 셰프의 영상을 틀어놓고 해산물 오일 파스타에 덜컥 도전했습니다. "다 비켜, 오늘은 아빠가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마늘은 새까맣게 타고, 해감도 안 된 조개에서는 모래가 씹혔으며, 면은 퉁퉁 불어버렸습니다. 완벽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려다 오히려 무능함만 들통난 그 기분. 줄리가 뵈프 부르기뇽(bœuf bourguignon)을 태워 먹고 바닥에 주저앉는 장면에서 저는 소파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중얼거렸습니다. "저 사람, 나잖아."

뵈프 부르기뇽이란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유래한 소고기 레드 와인 스튜로, 재료를 저온에서 장시간 끓여 깊은 풍미를 내는 요리입니다. 집에서 재현하려면 시간과 집중력이 동시에 필요한, 초보자에게는 꽤 벅찬 메뉴입니다.

마흔이 넘어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것

영화가 진짜 힘을 발휘하는 건 줄리아 차일드의 이야기에서 입니다. 그녀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르 코르동 블뢰(Le Cordon Bleu) 파리 캠퍼스에 입학합니다. 르 코르동 블뢰란 1895년 파리에서 설립된 세계 최고 권위의 요리 교육 기관으로, 전 세계 20개국 이상에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요리사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성지 같은 곳입니다(출처: Le Cordon Bleu 공식 사이트).

남성 셰프들만 가득한 전문가 반에서 줄리아는 철저히 무시당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양파를 산더미처럼 썰고, 혼자 남아 칼 쓰는 연습을 반복하며 기본기를 쌓아갑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요리 영화라기에 화려한 조리 장면을 기대했는데,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오히려 식재료 하나를 반복해서 다듬는 그 묵묵한 뒷모습이었습니다.

줄리아의 이야기가 저에게 특별히 울림을 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40대 가장으로서 매일 쳇바퀴 도는 직장 생활에 권태를 느끼면서도, "지금 와서 새로 뭔가를 시작하면 남들이 어떻게 볼까"라는 눈치가 항상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 생판 낯선 언어의 나라에서 앞치마를 두른 줄리아를 보고 있자니, 그 눈치가 조금 부끄러워지더군요.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메모해 둔 줄리아의 태도는 이렇습니다.

  • 실패해도 당황하지 않고, 주방에서 혼자일 땐 떨어뜨린 것도 주워 담으면 된다는 태도
  • 남들의 시선보다 요리 자체에 집중하는 몰입감
  • 무시하는 교장 앞에서도 끝까지 시험을 요구하는 끈기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OTT 이용자 중 40대 이상이 힐링·성장 장르 영화를 선호하는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일상의 피로와 자기 재발견 욕구가 반영된 현상으로 분석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줄리 앤 줄리아가 개봉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가 그 데이터 안에 있을 것입니다.

엉망이 된 파스타도 웃음이 되는 순간

제 경험으로 돌아가자면, 그날의 파국은 의외의 방식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식탁에 앉아 모래 씹히는 파스타를 먹던 두 딸아이와 아내가 갑자기 "푸흡!" 하고 터졌습니다. "아빠, 이거 조개 파스타야, 돌멩이 파스타야?" 아이들의 짓궂은 한마디에 잔뜩 굳어있던 제 입꼬리도 결국 씰룩거리다 무너졌고, 우리는 배달 앱을 켜서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그날의 실패를 유쾌한 안줏거리로 삼았습니다.

영화 속 줄리아 차일드는 요리가 망가졌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Never apologize(절대 변명하지 마세요)." 여기서 이 대사가 가진 무게는 단순히 요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주저앉지도 말고, 다시 팬을 달구라는 삶의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억눌려 있던 감정이 예술 작품을 통해 해소되며 정신적 정화를 경험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카타르시스를 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건네줍니다. 폭발적인 반전도, 눈물샘을 억지로 자극하는 장치도 없습니다. 그냥 두 여성이 주방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요리하는 장면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 가슴 어딘가가 따뜻해져 있습니다.

메릴 스트립은 줄리아 차일드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와 구부정한 자세까지 체화해 냈습니다. 프로소디(prosody), 즉 말의 고저·리듬·속도를 포함한 발화 패턴까지 실제 줄리아 차일드의 영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디테일이 살아있습니다. 버터를 듬뿍 두른 프라이팬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그 표정은, 영화 내내 관객의 입꼬리를 붙잡아 두는 힘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실제 주인공 줄리 파월은 2022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떠올리면, 화면 속 그녀의 좌충우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붙잡고 끝까지 해낸 사람의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와 집안일에 치여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까맣게 잊고 지내는 분이라면, 이 영화는 달콤한 디저트처럼 권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당장 마트로 달려가 버터를 집어 들고 싶어질 것입니다. 결과가 엉망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저도 그랬고, 줄리도 그랬고, 줄리아도 그랬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팬을 달구는 일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__4nF5yL7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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