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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스 포스터
영화 '줄스'

솔직히 저는 한동안 '듣는다'는 것이 그냥 귀를 여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말을 걸어도, 부모님이 전화를 해도 저는 항상 반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죠. 영화 <줄스>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SF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핵심은 "제대로 들어준다는 게 얼마나 희귀하고 강력한 일인가"를 묻는 완벽한 휴먼 드라마입니다. 말 한마디 없는 외계인이 고독한 노인들에게 가장 깊은 위로를 건네는 역설이, 제 뒤통수를 세게 때렸습니다.



노년 소외 — 줄스가 건드린 진짜 문제

영화의 주인공 밀튼은 매주 시의회에 나가 똑같은 민원을 넣습니다. "트렌트 애비뉴에 횡단보도를 만들어 달라."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치매 노인을 코미디 소재로 쓰는 건가 싶어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뒤에서야 밝히는 진실은 달랐습니다. 밀튼은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그 민원 말고는 시간을 채울 방법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들과는 연락이 끊겼고, 딸은 바쁘게 달려와서는 "요양원 알아봤어요"라는 말만 늘어놓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꺼내는 핵심 개념은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입니다. 사회적 고립이란 가족이나 지역사회와의 의미 있는 연결이 단절된 상태를 뜻합니다. 단순히 혼자 사는 것과는 다릅니다. 출처: WHO(세계보건기구)는 2023년 사회적 고립을 전 세계적 공중보건 위기로 규정하고 전담 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 건강 위험이라는 연구 결과도 함께 발표됐죠.

그런데 영화가 더 날카롭게 찌르는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밀튼의 뒷마당에 우주선이 추락하고 외계인이 나타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이웃 샌디와 조이스뿐입니다. 나머지 가족도, 시장도, 이웃도 아무도 밀튼의 집에 드나들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연성이 무너진 게 아니라, 노인의 집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현실을 그대로 담은 연출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부분이 가장 뼈아팠습니다.

벤 킹슬리는 깐깐하고 고집스럽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밀튼의 고독을 몸 전체로 표현합니다. 회의 끝나고 간신히 길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 아무것도 없는 거실에서 혼자 TV를 켜는 장면. 대사 한 줄 없이도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혼자였는지가 느껴집니다. 페이소스(pathos)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페이소스란 비애와 연민이 뒤섞인 감정적 공명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걸 과장 없이 정직하게 꺼내 놓습니다.

  • 밀튼이 매주 똑같은 민원을 넣는 이유는 치매가 아니라, 그것 외에 시간을 채울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 WHO는 사회적 고립을 하루 담배 15개비에 맞먹는 건강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뒷마당 우주선을 가족 아무도 모른다는 설정은 개연성 문제가 아니라, 노인의 일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를 그린 연출입니다
  • 벤 킹슬리는 과장 없는 페이소스로 밀튼의 30년치 고독을 온몸에 새겨 넣습니다
요약: 줄스는 SF 외피 안에 노년 소외와 사회적 고립의 실체를 담은 영화이며, 밀튼의 반복된 민원은 기억 장애가 아니라 철저한 단절의 증거입니다

 

경청의 가치 — 말 없는 외계인이 준 가장 큰 선물

줄스는 영화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밀튼과 샌디, 조이스는 줄스 앞에서 평생 털어놓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냅니다. 샌디는 치매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남편 이야기를, 조이스는 단절된 인간관계와 외로움을 꺼냅니다. 밀튼도 아들과의 소원함을, "나는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는 자책을 처음으로 입 밖에 냅니다. 줄스는 그저 동그란 눈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제 과거가 떠올라 꽤 불편했습니다. 40대 초반, 저는 철저한 효율과 논리의 신봉자였습니다. 아이가 하교 후 달려와 만화 영화 속 외계인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을 때면 미간을 찌푸리며 잘랐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수학 숙제나 먼저 끝내." 저는 아이의 두서없는 말을 들어주는 게 끔찍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이가 스케치북을 들고 와서 자신이 그린 외계인 그림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평소처럼 밀어내려다 아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습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얼굴을 봤더니, 전학 후 친구를 사귀지 못한 깊은 외로움을 '우주 미아' 그림에 빗대어 털어놓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직접 겪었는데, 아이는 해결책을 원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능동적 경청(active listening)이라고 부릅니다. 능동적 경청이란 조언이나 판단을 멈추고 상대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출처: APA(미국심리학회)에 따르면 능동적 경청은 관계의 신뢰와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영화 속 노인들은 가족도 이웃도 아닌, 말 못 하는 외계인에게서 처음으로 그 경험을 합니다. 그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가장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지점입니다.

영화 결말부에서 줄스는 우주선 연료를 만들기 위해 죽은 고양이 일곱 마리를 모읍니다. 이 설정이 처음엔 기괴하게 느껴졌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정교한 은유였습니다. 죽은 고양이, 즉 이미 흘러간 상실과 슬픔을 태워야만 새로운 세계로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떠나는 줄스에게 세 노인은 스노볼, 스웨터, 사진을 건넵니다. 모두 "나를 기억해 달라"는 메시지입니다. 이 장면에서 제가 처음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모든 관계의 본질이 결국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이 영화는 아주 조용하게 말해 줍니다.

요약: 줄스의 침묵은 무능이 아니라 가장 순도 높은 경청이며, 이 영화는 판단 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희귀하고 강력한 위로인지를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줄스 영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23년 개봉작으로, 국내에서는 넷플릭스 및 주요 VOD 플랫폼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벤 킹슬리 주연에 마크 토마스 맥기가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 러닝타임은 87분으로 짧고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편입니다.

 

Q. 줄스 영화가 노인 영화라는데, 젊은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을까요?

A. 제 경험상 오히려 30~40대에게 더 강하게 꽂히는 영화입니다. 부모님이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제대로 들어준 적이 있나"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반전 없이도 묵직하게 여운이 남는 휴먼 드라마로, 나이 불문하고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Q. 죽은 고양이를 연료로 쓰는 장면이 너무 기괴하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엔 그 장면에서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주의적 묘사가 아니라 상징적 은유로 읽어야 합니다. 과거의 상실과 슬픔을 태워야만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서정적 장치입니다. 오히려 이 설정 덕분에 영화의 여운이 훨씬 깊어집니다.

 

Q. 노인들이 줄스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뭔가요?

A. 단순히 외계인이 신기해서가 아닙니다. 줄스는 영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곁에 있어 줍니다. 조언도, 충고도, 걱정도 없이 그저 들어줍니다. 이것이 밀튼과 샌디, 조이스가 가족과 사회에서 오랫동안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서 처음으로 온전한 경청을 경험한다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결론

<줄스>를 다 보고 나서 저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특별한 용건이 없었습니다. 그냥 "오늘 어땠어?"라고 물었고, 30분 넘게 아이가 쏟아내는 이야기를 어떤 평가도 없이 끝까지 들었습니다. 그 30분이 제가 오랫동안 아이에게 주지 못했던 것이라는 게, 전화를 끊고 나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이 영화는 해결책을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관계가 회복됩니다"라는 공식도 없습니다. 다만 말 못 하는 외계인 하나를 통해, 누군가의 옆에 가만히 앉아 그 사람의 엉뚱하고 느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조용하고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연락을 못 했던 부모님이나 자녀가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전화 한 통 거는 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권유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blfIv1hi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