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3 영화 더 메이드 리뷰 (텃세 심리, 존재 가치, 해방감) 몇 달 전 일요일 아침, 저는 두 딸아이가 주방을 점령한 것을 발견하고 소파에 앉지 못한 채 계속 주방 언저리를 어슬렁거렸습니다. "프라이팬 코팅 벗겨진다, 나무 주걱 써라"라고 툭툭 끼어들면서요. 칠레 영화 를 보다가 그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20년간 남의 집 살림을 도맡아 온 하녀 라켈의 얼굴이 그 아침의 제 얼굴과 너무 닮아 있었거든요.텃세의 본질: 공격성이 아니라 생존 본능라켈은 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새로 온 하녀의 방 문을 밖에서 잠가버리고, 고양이를 내쫓기 위해 주인이 1년간 공들인 범선 모형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들이 얼핏 보면 옹졸하고 치졸해 보이지만, 저는 그 장면들에서 웃음보다 먼저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저도 직접 그 심리를 경험해 봤으니까요.행동심리학에서는 이.. 2026. 5. 17. 영화 더 해머 리뷰 (교정 본능, 감각의 역설, 정체성) 솔직히 저는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영화 한 편이 그 불편한 진실을 거울처럼 들이밀기 전까지는요. 영화 '더 해머'는 선천적 청각장애를 가진 맷이 레슬링 챔피언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제가 거기서 건져 올린 것은 스포츠 감동이 아니라 40대 아버지로서의 뼈아픈 오답 노트였습니다.사랑이라는 이름의 교정 본능맷의 할아버지는 손자가 비장애인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에 수어(手語) 사용을 전면 금지합니다. 수어란 청각장애인이 손동작과 표정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시각 언어 체계로, 농인(聾人) 공동체의 모국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바로 그 모국어를 빼앗고, 대신 독순술(讀脣術)과 구화법(口話法)을 강요합니다. 독순술이란 상대방의 입 .. 2026. 4. 30. 한 남자 영화 후기 (이중성, 정체성의 본질, 존재증명) 퇴근길 지하철에서 차창에 비친 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 적이 있으신가요? 직장 명함 속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벗겨내면, 과연 '나'라는 사람은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요? 일본 아카데미 8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를 보고 나서, 저는 지갑 속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사회가 부여한 이름표와 스펙으로만 존재를 증명받아온 40대 중반의 제게, 이 영화는 꽤나 서늘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타인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신분 세탁의 이중성일반적으로 신분 세탁(identity theft)이라 하면 범죄 스릴러의 단골 소재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신분 세탁이란 타인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도용해 법적·사회적 지위를 위장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출처: 대검찰청). 하지만 는 '누가 범인인가'를 쫓는 대.. 2026. 3. 3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