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중간에 꽤 불편했습니다. 주인공 에이브가 저지르는 짓이 끔찍해서가 아니라, 그의 내면 독백이 어딘가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디 앨런 감독의 2015년작 은 살인을 저지르는 철학 교수의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합리적인 어른'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위선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작품입니다. 결말 포함 리뷰입니다.살인이 삶의 의미가 된다는 것 — 허무주의와 합리화의 구조영화 속 에이브 루카스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망가진 사람처럼 보입니다. 불룩한 배, 술 냄새, 무기력한 눈빛. 강단에서는 칸트와 키르케고르를 논하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 상태를 철학 용어로 허무주의(Nihilism)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허무주의란 삶에 본래적인 의미나 가치가 없다고 느..
아이에게 기타를 사줬던 날, 저는 대뜸 "석 달 안에 곡 하나는 완성해야지"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낯이 뜨겁지만, 그때의 저는 그게 응원이라고 믿었습니다. 영화 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착각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았습니다.20년째 절필 중인 작가를 찾아서 — 이야기의 출발점런던의 대형 출판사에 다니는 편집자 제레미는 어느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대표에게 불가능한 미션을 받습니다. 20년간 단 한 줄도 쓰지 않은 전설적인 작가, 웰던 패리시를 찾아가 원고를 받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레미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작은 마을로 향하고, 거기서 낡은 집 지하창고에 틀어박혀 와인을 마시며 살고 있는 웰던을 마주하게 됩니다.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은 "저 편집자, 나랑 너무 비슷하다"였습..
아이의 책상 서랍 깊은 곳에서 낡은 스케치북을 꺼내든 순간, 저는 그동안 제가 얼마나 잔인한 '현실주의자'였는지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 안에는 아이슬란드의 오로라와 낯선 골목길 스케치가 빼곡했고, 옆에는 '언젠간 꼭 가야지'라는 글귀가 꾹꾹 눌러 적혀 있었습니다. 영화 는 바로 그날 밤 제가 느꼈던 먹먹함을 스크린 위에 고스란히 옮겨 놓은 작품입니다.몽상가 월터, 상상과 현실 사이에 갇히다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영화 포스터만 봤을 때는 그냥 가볍게 웃고 넘기는 어드벤처 코미디겠거니 했는데, 막상 초반 10분을 보고 나서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월터 미티(벤 스틸러 분)는 세계적인 사진 잡지 의 사진 필름 관리자입니다. 필름 관리자란 사진작가가 촬영한 원본 필름을 받아 현상·보관·전달하는..
솔직히 저는 한동안 '가장'이라는 단어가 무기인 줄 알았습니다. 돈을 벌어온다는 사실 하나로 가족 위에 군림해도 된다고, 그게 아빠의 권리라고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영화 는 바로 그 착각의 민낯을 찌르는 작품입니다. 36년간 스코틀랜드 조선소에서 평생을 바친 중년 남성이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당한 뒤, 차가운 영국 해협을 맨몸으로 건너겠다는 무모한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보는 내내 제 40대 초반의 어느 서글픈 계절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실직 트라우마 — 가장이라는 갑옷이 무너지던 날제가 권고사직 통보를 받던 날, 처음 든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수치심이었습니다. '부장'이라는 직함과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봉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저를 완전히 집어삼켰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가..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교육이 결국 아이를 강하게 만든다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2014년 개봉한 는 재능 있는 드러머 앤드류와 완벽주의 지휘자 플레처의 극단적인 사제 관계를 통해, 그 믿음이 얼마나 잔인한 착각인지를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해부합니다. 106분 내내 등줄기가 서늘했고, 영화가 끝난 뒤엔 제 과거가 너무 선명하게 겹쳐 보여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폭력적 교육: "굿 잡(Good Job)"이 가장 위험한 말이라고?일반적으로 칭찬은 아이의 동기를 끌어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플레처 교수는 이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그는 "굿 잡(Good Job)"이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두 단어라고 단언하며, 앤드류가 템포..
바이올린 오디션에서 세 번 연속 낙방한 주인공이 아일랜드로 떠나는 장면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목이 메었습니다. 2021년 개봉작 는 '기술은 완벽한데 감정이 없다'는 혹평 한 마디가 얼마나 사람을 무너뜨리는지, 그리고 그 무너진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지를 아일랜드의 압도적인 자연 속에 녹여낸 작품입니다. 이걸 처음 봤을 때 제 아이한테 했던 짓들이 떠올라 꽤 오래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세 번의 낙방이 만든 여행 — 핀리의 시작영화는 핀리가 뉴욕의 음악 오디션장을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심사위원이 내린 평가는 단호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지만, 감정이 없다"는 것이었죠. 이걸 저는 처음에 그냥 영화적 설정이려니 했는데, 직접 겪어보니 이게 얼마나 정확한 진단인지 알게 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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