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야수라 불리던 개가 사실은 가장 순수한 존재였다면, 그렇다면 진짜 야수는 누구였을까요. 2013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화 〈벨과 세바스찬〉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스크린 속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때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편견이라는 이름의 야수 — 벨과 세바스찬이 드러낸 것
영화는 1945년 프랑스 알프스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양 떼를 물어 죽인다는 소문이 도는 거대한 떠돌이 개, 마을 사람들은 총을 들고 그 개를 추적합니다. 그런데 꼬마 세바스찬만은 달랐습니다. 진흙을 뒤집어쓴 그 개의 눈동자에서 위협이 아닌 무언가를 본 것입니다. 세바스찬은 그 개에게 '벨(Bell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흙먼지를 씻어내자 눈부시도록 하얀 피레니안 마운틴 독(Pyrenean Mountain Dog)의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피레니안 마운틴 독이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지대 피레네 산맥에서 수백 년간 양 떼를 지켜온 대형 목양견으로, 충성심과 온화한 기질로 잘 알려진 품종입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봤을 때 멈칫했습니다. 벨이 야수가 된 것은 벨의 본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던 겁니다. 그 순간 저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동네에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동네 어른들의 소문만으로 그 아이를 피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인사도 하지 마"라는 말을 제 아이에게 직접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습니다.
영화에는 이 편견의 구조가 두 겹으로 겹쳐 있습니다. 벨에게 야수의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2차 세계대전(Second World War) 당시 유대인을 사냥하던 나치(Nazi)의 모습이 소름 돋도록 닮아 있습니다. 여기서 2차 세계대전이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벌어진 전 세계적 무력 충돌로, 나치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역사적 비극의 시기입니다. 영화는 동화의 틀을 빌리면서도, 짐승의 탈을 쓴 진짜 야수는 편견과 증오에 사로잡힌 인간이라는 사실을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의견이 갈리기도 합니다. "어린이 가족 영화에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넣는 게 적절하냐"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합니다. 아이들이야말로 이 영화가 건네는 질문, 즉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이 진짜 야수인가'를 가장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이라고 느꼈습니다. 어른들은 이미 너무 많은 편견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가니까요.
- 벨이 야수로 불린 이유는 목격이 아닌 소문, 즉 집단적 편견의 산물이었습니다
-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마을 사람들의 개 사냥은 의도적으로 병치된 서사 장치입니다
- 세바스찬이 벨을 씻겨 하얀 털을 드러내는 장면은 편견이 걷혀야 진실이 보인다는 시각적 은유(Visual Metaphor)입니다. 시각적 은유란 대사나 자막 없이 화면 속 이미지만으로 주제를 전달하는 영화 기법입니다
- 어느 비 오는 날, 제가 '문제아'라 낙인찍었던 그 아이가 젖은 새끼 고양이를 자신의 낡은 겉옷으로 감싸 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 장면이 세바스찬이 벨을 씻겨내는 장면과 겹쳐 보였습니다
알프스가 품은 미장센 — 대자연이 전쟁을 삼키는 방식
제가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압도된 것은 배우도 개도 아닌, 풍경이었습니다.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을 가르는 알프스(Alps) 산맥의 설원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프랑스어에서 온 영화 용어로,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경·조명·배우의 동선·소품까지 포함한 화면 구성 전체를 뜻합니다. 이 영화의 미장센은 탁월합니다. 새하얀 설산이 펼쳐지는 장면 앞에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전쟁의 비극은 잠시나마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가 느껴집니다.
세바스찬이 절벽 앞에서 위기를 맞을 때 벨이 구해주는 장면, 불시착한 비행기, 불길에 갇힌 산속에서 다이너마이트로 길을 여는 장면까지. 이 모든 액션이 알프스라는 거대한 공간 안에 놓이면서 스케일이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감독 니콜라 밴니에르(Nicolas Vanier)는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으로, 생태 환경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설산 장면들은 CG가 아닌 실제 자연의 호흡이 느껴집니다(출처: IMDb, Belle and Sébastien).
스크린 속 세바스찬 역을 맡은 펠릭스 보쉬(Félix Bossuet)와 실제 피레니안 마운틴 독 사이의 교감은 인공적인 연출로는 만들기 어려운 종류의 것입니다. 이 교감을 '인간-동물 유대(Human-Animal Bond)'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인간-동물 유대란 인간과 동물 사이에 형성되는 정서적·심리적 상호작용을 뜻하는 개념으로, 최근 동물 보조 심리 치료 분야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출처: Human Animal Bond Research Institute(HABRI)).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두 배우(아이와 개)의 장면에서만큼은 연기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냥 함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동물이 나오는 영화는 감성팔이 아니냐"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벨은 귀여움을 팔지 않습니다. 불길 속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동굴 속에 갇힌 누나 안젤리나를 찾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개는 영화 내내 자신이 야수가 아님을 말로 증명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합니다. 그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벨과 세바스찬은 몇 살 이상 아이들이 볼 수 있나요?
A. 공식 등급은 전체 관람가입니다. 다만 2차 세계대전 배경으로 나치가 등장하고 불시착·화재 등 긴박한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부모와 함께 보는 편이 낫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봤는데, 오히려 아이 쪽이 더 의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편견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아이들이 잘 이해합니다.
Q. 벨과 세바스찬에 나오는 개 품종이 뭔가요?
A. 영화 속 벨은 피레니안 마운틴 독(Pyrenean Mountain Dog)입니다. 프랑스어로는 '그랑 피레네(Grand Pyrénées)'라고 불리며, 성견이 되면 상당히 큰 체구를 자랑합니다. "순하고 조용한 품종이라 키우기 쉽다"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운동량이 많고 털 빠짐이 심해 관리가 쉬운 편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고 입양을 고려하신다면 품종 특성을 충분히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Q. 결말에서 안젤리나는 살아있나요?
A. 네, 살아있습니다. 모두가 죽었다고 포기했지만 세바스찬 혼자 믿음을 잃지 않았고, 벨이 동굴 안에서 안젤리나를 발견하면서 구출에 성공합니다. "해피엔딩이 뻔하지 않느냐"라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이 결말이 뻔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세바스찬이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기까지의 과정이 워낙 험했기 때문입니다.
Q. 벨과 세바스찬이 원작 소설이나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건가요?
A. 맞습니다. 프랑스 작가 세실 오브리(Cécile Aubry)가 1965년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같은 해 TV 드라마 시리즈로도 제작되어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2013년 영화는 원작의 정서를 유지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보다 전면에 내세운 점이 차이입니다.
결론
〈벨과 세바스찬〉은 아이가 개와 모험을 떠나는 영화라는 설명만으로는 너무 많은 것이 빠집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꽤 날카롭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무언가에, 또는 누군가에게 야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는 않을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비 오는 날의 장면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줬던 그 순간이 제 안에서 세바스찬이 벨의 흙먼지를 씻겨내는 장면과 겹쳤기 때문입니다. 세바스찬처럼 총을 거두고 먼저 손을 내밀었던 그 선택이 지금도 부끄럽지 않은 제 과거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알프스의 설원을 배경으로 아이와 개가 만들어낸 이 이야기를, 가능하다면 아이와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 Total
- Today
- Yesterday
- 40대공감
- 번아웃
- 독립영화
- 힐링영화추천
- 애도
- 영화 추천
- 성장영화
- 버킷리스트
- 힐링영화
- 인생영화
- 영화 리뷰
- 가족
- 실화영화
- 영화추천
- 넷플릭스 영화
- 가족영화
- 힐링 영화
- 감동영화
- 육아
- 로드무비
- 인간관계
- 일본영화
- 육아반성
- 부성애
- 결말포함
- 가족의의미
- 부모역할
- 일본영화추천
- 인종차별
- 영화리뷰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
| 6 | 7 | 8 | 9 | 10 | 11 | 12 |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 27 | 28 | 29 | 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