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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언더독 포스터
영화 '아메리칸 언더독'

마트 야간 알바를 하면서도 NFL 슈퍼볼 MVP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통계적으로 NFL 드래프트 지명을 받는 대학 선수는 전체의 1.6%에 불과합니다(출처: NCAA). 지명조차 받지 못한 선수가 리그 MVP를 거머쥔다는 건 그 확률을 한참 밑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실화입니다. 영화 <아메리칸 언더독>은 바로 그 불가능한 수치를 실제로 뒤집은 커트 워너(Kurt Warner)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한때 아이의 꿈을 숫자로만 재단하던 제 과거가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마트 통조림 진열대가 만들어낸 NFL 쿼터백

커트 워너의 이력은 NFL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커리어 궤적 중 하나로 꼽힙니다. 대학 시절 4년 내내 벤치 멤버로 머물렀고, 졸업 후엔 7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 안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드래프트(Draft)란 NFL 구단들이 신인 선수를 순서대로 지명하는 공개 선발 제도로, 7라운드까지 총 수백 명이 지명되는데 커트는 그 명단에 없었습니다.

그린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에서 훈련 선수 자격으로 잠시 기회를 얻었지만, 단 한 번의 판단 실수로 방출됩니다. 이후 모든 NFL 구단에서 거절 통보를 받은 그는 아이오와 주 슈퍼마켓 체인 하이비(Hy-Vee)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야간에 통조림을 진열하는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만큼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 아팠습니다.

하지만 커트는 텅 빈 진열대 앞에서 공을 던지는 시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아레나 풋볼 리그(Arena Football League, AFL)였습니다. AFL이란 실내 경기장에서 진행되는 미식축구의 변형 종목으로, NFL보다 훨씬 좁은 필드에서 훨씬 빠른 속도로 경기가 전개됩니다. 쉽게 말해 AFL은 NFL의 압축 판이자 고강도 버전입니다. 커트는 이곳에서 3년을 버티며 건슬링거(Gunslinger), 즉 빠르고 정확하게 장거리 패스를 쏘아내는 쿼터백 스타일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세인트루이스 램스(St. Louis Rams)의 주전 쿼터백 트렌트 그린(Trent Green)이 프리시즌 중 부상을 당하면서 커트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대학 리그 만년 벤치 출신이 NFL 개막전 선발 쿼터백으로 섰고, 66,000명의 관중 앞에서 압도적인 첫 승을 따냈습니다. 그 시즌 커트 워너는 리그 MVP(Most Valuable Player, 시즌 최우수 선수)와 슈퍼볼(Super Bowl) MVP를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 드래프트 미지명 → 하이비(Hy-Vee) 마트 야간 알바
  • 아레나 풋볼 리그(AFL) 3년 → 건슬링어 스타일 완성
  • 1999시즌 NFL 리그 MVP + 슈퍼볼 MVP 동시 수상
  • 통산 NFL 패서 레이팅(Passer Rating) 93.7 — 역대 상위권 기록

저는 이 커리어 흐름을 정리하며 한 가지 수치에 눈이 멈췄습니다. AFL 시절 커트의 연봉은 NFL 최저 연봉의 10분의 1 수준이었고, 그 돈으로 이혼녀에 시각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던 브렌다(Brenda)와 가정을 꾸렸습니다. 브렌다는 화려한 조력자가 아니라 가스비가 끊긴 추운 집에서 커트의 체온이 되어준 사람이었습니다. 그 관계의 온도가 영화 내내 배우 재커리 리바이(Zachary Levi)와 안나 파킨(Anna Paquin)의 연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제가 직접 본 스포츠 영화 중 로맨스 파트가 이렇게까지 묵직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습니다.

요약: 드래프트 미지명에서 마트 알바, AFL 3년을 거쳐 NFL MVP에 오른 커트 워너의 커리어는 '버티는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실재함을 수치로 증명합니다.

 

아이의 기타를 부수려 했던 제가 이 영화에서 본 것

저는 40대 가장으로서 오랫동안 철저한 결과 중심의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아이가 대학 진학 대신 인디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저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네가 무슨 천재라도 되는 줄 알아? 당장 기술이나 배워." 눈앞에 수익이 없는 꿈은 제 눈에 불량품이었습니다.

제 지원이 끊기자 아이는 새벽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날랐고 밤에는 편의점 알바를 뛰었습니다. 속으로 저는 '저러다 제풀에 지쳐 포기하겠지' 하고 차갑게 방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소파에 작업복을 입은 채 쓰러져 잠든 아이를 보았습니다.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옆에는 꼬깃꼬깃한 알바비로 산 낡은 중고 음향 장비가 놓여 있었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 장면이 영화 속 커트 워너가 하이비 진열대 사이에서 공을 던지는 시늉을 하던 그 장면과 정확히 겹쳤습니다. 저는 그게 철없는 고집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가장 밑바닥에서 자신만의 슈퍼볼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언더독 이론이 말하는 것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를 자주 다룹니다. 언더독 효과란 불리한 조건에 처한 경쟁자가 오히려 더 강한 동기 부여와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발휘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저서 <다윗과 골리앗>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출처: Gladwell Books). 커트 워너의 AFL 경험이 정확히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NFL보다 좁고 빠른 경기장에서 3년을 버틴 것이 오히려 그의 패스 속도와 판단력을 NFL 수준 이상으로 단련시킨 겁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 논리의 오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검증된 트랙'만 강요했는데, 사실 검증되지 않은 그 험로 자체가 남들이 갖지 못한 훈련소가 될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겁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 착각을 고집했을 것 같아 솔직히 아찔합니다.

재커리 리바이가 연기한 커트는 히어로가 아닙니다. 잔뜩 겁을 먹고 실수를 연발하고, 가족에게 소홀해지다 이별 통보를 받는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입니다. 그 불완전함이 이 영화를 단순한 성공 신화가 아닌 진짜 인간의 이야기로 만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상처받는 무명 선수를 소화한 재커리 리바이의 연기는, 제가 본 그의 필모그래피 중 단연 가장 조용하고 단단한 퍼포먼스였습니다.

요약: 언더독 효과가 실제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영화가 아닌 새벽 소파에서 잠든 아이의 굳은살 박힌 손을 통해 먼저 배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메리칸 언더독은 실화를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했나요?

A. 영화의 핵심 사건들, 즉 드래프트 미지명, 하이비(Hy-Vee) 마트 야간 알바, 아레나 풋볼 리그(AFL) 참가, 트렌트 그린 부상으로 인한 기회 획득, 1999시즌 슈퍼볼 MVP 수상까지는 모두 검증된 실화입니다. 다만 브렌다와의 관계 전개 일부와 코치와의 갈등 장면은 극적 구성을 위해 각색된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체 틀은 실화이지만 세부 장면은 영화적 재구성임을 감안하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Q. 아레나 풋볼 리그(AFL)가 뭔가요? NFL이랑 어떻게 다른가요?

A. AFL은 실내 경기장에서 진행되는 미식축구의 파생 종목으로, 필드 길이가 NFL의 절반 수준인 약 50야드입니다. 공간이 좁은 만큼 경기 속도가 훨씬 빠르고 신체 충돌도 더 잦습니다. 연봉 수준은 NFL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 주류 리그로 인정받지 못하는 마이너 무대였습니다. 커트 워너는 오히려 이 극한 환경에서 빠른 판단과 정확한 패스 능력을 연마했고, 그것이 NFL에서 건슬링어 스타일로 폭발했습니다.

 

Q. 재커리 리바이가 이 역할에 어울리나요? 히어로물 이미지가 강하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엔 그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재커리 리바이는 이 영화에서 철저하게 작아지고 흔들리는 인물을 연기하는데, 슈퍼히어로적 카리스마를 전혀 꺼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전이 설득력 있게 작동합니다. 커트 워너 본인도 인터뷰에서 캐스팅에 만족을 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Q. 커트 워너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A. 커트 워너는 2009년에 은퇴했고, 현재는 자선재단 퍼스트 씽스 퍼스트 재단(First Things First Foundation)을 운영하며 어려운 처지의 가정을 돕는 사회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NFL 명예의 전당(Pro Football Hall of Fame)에 입성했습니다. 통산 패서 레이팅 93.7은 역대 NFL 쿼터백 중 상위권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결론

커트 워너의 이야기는 성공 확률 1%를 뚫은 '특별한 천재'의 신화가 아닙니다. 드래프트 지명률 1.6%라는 냉혹한 통계 바깥에서도 AFL이라는 또 다른 훈련소를 스스로 찾아낸 사람의 기록입니다. 저는 그 여정을 보며 제가 아이에게 가한 것이 현실적 조언이 아니라 그저 겁쟁이의 방어막이었다는 걸 비로소 인정했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통장 잔고나 연봉 같은 숫자로 사람의 가능성을 재단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 숫자가 얼마나 얄팍한 잣대인지 이 영화가 조용하고도 단단하게 되돌아보게 해 줄 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조언 대신 그냥 "계속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전부였는데, 그게 맞는 말이었다는 걸 지금도 믿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7ry1TFpCeg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