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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때는 완벽한 조건을 갖춰야만 아이들이 진짜로 행복해질 거라 믿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보고 나서야, 그 믿음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신칸센이 교차하는 순간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좇아 먼 길을 떠난 소년 코이치의 여정은, 어른이 된 제 가슴에 훨씬 더 깊은 자국을 남겼습니다.
소원을 외치지 못한 소년, 그리고 폭우 속의 아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저는 이 작품이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기적적으로 재결합하는 따뜻한 해피엔딩을 보여줄 거라 단순하게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결정적인 장면, 두 대의 신칸센이 굉음을 내며 스쳐 지나가는 찰나에 코이치는 끝내 소원을 삼켜버립니다.
코이치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건 딱 하나였습니다. 화산이 폭발해 온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는 것. 화산재가 주기적으로 쌓이는 가고시마에서 이혼한 어머니와 외가에 얹혀살면서도, 이 아이는 그 소원 하나를 붙들고 버텼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기적의 순간이 왔을 때, 코이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딱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몇 해 전, 40대 가장으로서 제가 기획한 가족여행의 기억입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시간을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함을 한 방에 해소하겠다며, 비싼 리조트와 놀이공원 풀코스를 예약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그 여행은 완벽한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일 폭우가 쏟아졌고, 놀이기구는 전부 운행을 멈췄습니다.
저는 씩씩거리며 아이들 앞에서 짜증을 쏟아냈습니다. "아빠가 너희들 최고로 재밌게 해주려고 뼈 빠지게 돈 벌어서 온 건데!"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장면입니다. 코이치가 화산 폭발이라는 거대한 기적에 집착했듯, 저 역시 완벽한 여행 계획이라는 거창한 기적에 집착하고 있었던 겁니다.
물웅덩이와 가루칸 떡 — 일상의 기적이 가진 맛
제가 씩씩거리며 앞서 걷는 동안, 아이들은 제 뒤에서 물웅덩이에 발을 첨벙거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더 높이 물을 튀기는지 시합을 하면서요. 신발이 흠뻑 젖었는데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아빠, 이거 진짜 재밌어!"라고 소리쳤습니다. 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영화 속에도 이와 꼭 닮은 장면이 있습니다. 코이치의 할아버지가 정성껏 만드는 가루칸 떡 이야기입니다. 가루칸은 가고시마의 전통 화과자(일본 전통 과자의 총칭)로, 자극적인 단맛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기서 화과자란 설탕이나 팥소를 주재료로 한 일본 전통 방식의 과자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할아버지는 "단맛이 없는 게 특징이지, 진짜 맛있는 건 달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처음엔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던 코이치가, 기적을 삼키고 돌아온 뒤 그 떡에서 희미한 단맛을 느끼게 되는 결말은 영화의 핵심 메타포입니다. 메타포(metaphor)란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이 다른 의미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상징적 표현 방식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가루칸의 심심한 맛은 곧 아무 사건도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의 맛과 같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 코이치의 성장을 두고 심리학에서는 수용(acceptance)이라는 개념을 씁니다. 수용이란 자신이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저항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적 태도를 말합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 따르면, 역경 속에서 현실을 수용하는 태도는 아동의 심리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이는 핵심 요인 중 하나입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상처나 역경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는 심리적 힘을 의미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알겠습니다. 물웅덩이에서 놀던 그날, 아이들이 보여준 건 수용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그 안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내는 힘. 제가 억지로 만들어주려 했던 기적보다 훨씬 단단하고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 가루칸 떡의 슴슴한 단맛 = 자극 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은은한 깊이
- 물웅덩이에서의 웃음 = 완벽하지 않은 환경에서 스스로 건져 올린 행복
- 코이치의 침묵 = 현실을 수용하는 아이의 조용하고 눈부신 성장
불완전한 어른들, 그래도 자라는 아이들 —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건네는 위로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많은 가족 영화들이 어른의 잘못을 드라마틱하게 뉘우치고 가족이 해피엔딩으로 봉합되는 서사를 택합니다. 그런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 길을 가지 않습니다.
영화 속 아빠 켄지는 인디밴드 활동을 핑계로 아들 류노스케의 저녁을 혼자 때우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답 없을 정도로 낙천적인 성격 탓에 이혼까지 당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아들에게만큼은 진심으로 좋은 아버지이고, 영화는 그 결함 있는 모습을 섣불리 교화하거나 훈계하지 않습니다. 엄마 노조미 역시 동창회 뒤 찾아오는 공허함에 눈물을 훔치는, 완벽하지 않은 어른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 철학을 가리켜 영화 비평 용어로 관찰자 시점(observational cinema)이라고 부릅니다. 관찰자 시점이란 감독이 인물을 판단하거나 교정하려 들지 않고, 삶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카메라가 개입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지켜보는 방식입니다. 이 연출 방식은 출처: The Criterion Collection에서도 이 영화를 분석하며 고레에다 감독의 핵심 미학으로 지목한 바 있습니다.
저도 그날 폭우 속에서 그 관찰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뭔가가 달라졌습니다. 분노를 멈추고 아이들 곁으로 걸어가 함께 물웅덩이를 밟았습니다. 엉망진창으로 비를 맞으며 웃었던 그 오후는, 제가 수십만 원을 쏟아부어 기획한 어떤 여행보다 더 선명하게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거창한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도 화산재처럼 쌓이는 먼지를 쓸어내고, 곁에 있는 아이의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는 이 지루하고 평범한 하루가 실은 얼마나 단단한 기적인지를 제가 직접 깨닫게 된 건, 이 영화 덕분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나요?
A. 제 경험상, 아이들에게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부모에게 특히 권하고 싶습니다. 자극적인 드라마나 반전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라 처음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 보고 나면 가루칸 떡처럼 은은한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이혼 가정 자녀를 다루는 방식이 매우 따뜻하고 현실적이어서 가족 형태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Q. 영화 속 신칸센 교차 장면이 실제로 촬영된 건가요?
A. 네, 실제로 규슈 신칸센 개통 시기에 맞춰 촬영된 장면입니다. 가고시마 중앙에서 출발하는 사쿠라호와 하카타에서 출발하는 츠보미호가 구마모토 부근에서 교차하는 실제 장면을 활용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개통 이벤트에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알려져 있어, 그 현장감이 영화의 진짜 매력 중 하나입니다.
Q. 영화에서 가루칸 떡이 자주 나오는 이유가 있나요?
A. 단순한 지역 소품처럼 보이지만, 가루칸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품은 핵심 메타포입니다. 자극적인 단맛이 없고 처음엔 밍밍하게 느껴지지만, 씹을수록 은은한 깊이가 드러나는 그 맛이 곧 일상의 맛을 상징합니다. 코이치가 여행 전과 후에 가루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장면은, 소년의 내면 성장을 가장 조용하고 섬세하게 보여주는 연출입니다.
Q. 동생 류노스케는 왜 가족 재결합을 원하지 않았나요?
A. 류노스케는 부모가 싸우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 코이치가 이혼 이전의 가족이라는 과거를 회복하고 싶다면, 류노스케는 지금 아빠와 함께하는 자유로운 일상 속에서 이미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두 아이가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영화의 가장 섬세한 부분 중 하나이고, 고레에다 감독이 어느 쪽도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결론
저는 그날 물웅덩이에 뛰어든 뒤로, 완벽한 기적을 만들어주겠다는 피곤한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코이치가 신칸센 앞에서 소원을 삼켰듯, 저도 그 순간 억지로 현실을 바꾸려는 발버둥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제가 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화려한 기적 대신, 젖은 양말을 신고도 웃음을 터뜨리는 씩씩한 발걸음 안에 이미 진짜 기적이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거창한 반전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극적인 화해도 없습니다. 그냥 아이들이 자랍니다. 그런데 그 성장이, 가루칸 떡처럼 씹을수록 깊어지는 여운을 남깁니다. 계획이 틀어지고 비가 내리는 날에도 곁에서 함께 웅덩이를 밟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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