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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건너편 포스터
영화 '희망의 건너편'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세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제가 영화 한 편 때문에 그 믿음을 완전히 내려놓게 됐습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2017년작 <희망의 건너편>은 시리아 난민 문제를 다루면서도 눈물 한 방울 짜내지 않고, 오히려 무표정한 웃음 사이로 가장 묵직한 인간 연대의 이야기를 조용히 꺼내놓는 영화입니다.



무뚝뚝한 환대 — 거창한 선의 없이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제가 40대 가장으로 살아온 시간 동안, 저는 꽤 단단한 울타리를 쳐두고 있었습니다. 길에서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을 마주치면 아이의 손을 꽉 잡고 반대편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나라에서 다 알아서 할 일이야"라는 말을 아이에게 단호하게 내뱉으면서, 그게 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합리가 아니라 비겁이었습니다.

영화 속 핀란드인 사업가 빅스트룀은 그런 저와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그는 거창한 연설도, 측은한 눈빛도 없습니다. 자기 식당 쓰레기통 옆에서 웅크려 자고 있던 시리아 난민 칼레드를 발견하자마자 주먹다짐부터 벌이고, 잠시 후 피를 닦으며 고기 수프 한 그릇을 무심하게 내밀었습니다. 이름도, 국적도 묻지 않은 채.

이 장면이 저를 얼마나 찌르는지 모릅니다. '투박한 환대(Rough Hospitalit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투박한 환대란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그저 옆에 있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군말 없이 내어주는 행위를 뜻합니다. 빅스트룀이 칼레드에게 한 행동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봤는데, 이런 무심한 친절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받아본 사람만 압니다. 지방 출장 중 폭우 속에서 지갑과 스마트폰을 동시에 잃어버렸을 때, 서툰 한국어로 "비 맞으면 아파요, 이거 써요"라며 우산과 캔커피를 건네고 빗속으로 사라진 외국인 노동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그 30초짜리 행동이 제 이기심의 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빅스트룀이 칼레드에게 수프를 내밀던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제가 그날 받았던 캔커피의 온기가 다시 손바닥 안에 살아났습니다.

  • 빅스트룀은 이름도 국적도 묻지 않고 칼레드를 식당 직원으로 채용합니다
  • 창고를 내어주고,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주며, 동생 수소문을 위해 자기 돈과 트럭을 내어줍니다
  • 이 모든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대가를 바라거나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요약: 진정한 환대는 동정심이나 대가 없이, 그저 옆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무심하게 내어주는 투박한 행위에서 시작됩니다.

 

연대 — 상처받은 루저들이 세상을 구하는 방식

영화 속 빅스트룀의 식당 '골든 파인트'는 꽤 황당한 공간입니다. 요리 실력이 의심스러운 요리사, 표정이 없는 홀 서빙 직원, 그리고 한쪽 구석을 차지한 떠돌이 개 코이슈티넨까지. 제가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는 웃음이 먼저 나왔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이 식당이 그냥 코미디 장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주류 사회에서 한 발씩 비껴선 사람들입니다. 취업이 안 되어 식당에 묶인 사람, 쓸모 있는 곳을 찾지 못한 사람, 버려진 개까지. 이 '연대(Solidarity)'의 공동체가 망명이 거부된 난민 칼레드를 숨기고 지켜냅니다. 여기서 연대란 정치적 구호나 서명 운동이 아니라, 당장 내 처지도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어려운 처지의 누군가를 아무 말 없이 감싸는 실천을 뜻합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초밥집으로 업종 전환에 나서는 씬입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초밥집이라니, 어이없는 발상이지만 직원들은 유튜브를 보며 초밥을 배워 메뉴판을 바꿉니다. 이 장면은 웃기지만 동시에 묘하게 뭉클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우스꽝스러워도, 일단 해보려는 그 어설픈 의지가 바로 연대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UN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강제 이주민 수는 1억 1,7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출처: UNHCR). 제가 이 수치를 뉴스에서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숫자로만 읽혔습니다. 하지만 칼레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나면, 그 1억 명이 각각의 얼굴과 이름과 여동생을 찾아 헤매는 사연을 가진 사람들로 바뀝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노린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숫자가 아닌 한 사람의 얼굴로 보게 만드는 것.

요약: 세상을 구하는 연대는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자기 처지도 넉넉하지 않은 상처받은 이들이 어설프게나마 손을 맞잡는 데서 태어납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 무표정한 유머로 완성하는 가장 따뜻한 영화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영화가 무겁고 우울한 사회고발 다큐멘터리 같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영화 내내 웃다가, 어느 순간 마음 한쪽이 조용히 아파오는 구조였습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특유의 데드팬 코미디(Deadpan Comedy) 때문입니다. 데드팬 코미디란 배우가 아무런 감정 표현 없이 극도로 무표정한 상태에서 웃기는 상황을 연출하는 유머 기법을 뜻합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웃기고, 눈물을 유도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먹먹합니다.

이 영화에는 신파(Melodrama)가 단 한 장면도 없습니다. 신파란 과장된 감정 연출로 관객의 눈물을 인위적으로 자극하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칼레드는 가족을 모두 잃었고, 여동생과도 헤어졌으며, 망명까지 거부당했습니다. 이 정도 사연이라면 보통 영화에서는 오열 장면이 나올 법합니다. 하지만 칼레드는 꼿꼿하게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걷습니다. 그 침묵이 울음보다 훨씬 더 마음을 파고듭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결말부입니다. 네오나치에게 칼에 찔린 칼레드가 상처를 누른 채 나무 아래 쭈그려 앉아 있고, 떠돌이 개 코이슈티넨이 그 옆에 앉습니다. 잠시 후 칼레드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감동을 강요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덤덤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미소 하나에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핀란드 영화진흥원(Finnish Film Foundation) 자료에 따르면,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을 비롯해 유럽 3대 영화제에서 꾸준히 수상했습니다(출처: Finnish Film Foundation). <희망의 건너편> 역시 2017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은곰상)을 수상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수상 이력이 붙은 영화 중에 '감독의 자의식만 남은 지루한 작품'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상을 받을 만한 이유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분명하게 납득이 됐습니다.

요약: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데드팬 코미디는 신파 없이도 난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장 인간적인 온도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 독보적인 연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희망의 건너편, 너무 무겁고 우울한 영화 아닌가요?

A. 제가 처음에 똑같은 걱정을 했는데, 실제로는 생각보다 훨씬 유머러스합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특유의 데드팬 코미디 덕분에 내내 피식피식 웃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조용히 뭉클해지는 구조입니다. 억지 눈물을 짜내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Q. 영화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A.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칼레드는 네오나치에게 칼에 찔리는 폭력을 겪고, 세상은 여전히 가혹합니다. 하지만 잃어버렸던 여동생 마리암과 다시 만나고, 상처를 입은 채로도 나무 아래서 희미하게 미소 짓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열린 결말에 가깝습니다.

 

Q.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영화를 처음 보는데 이 작품부터 봐도 될까요?

A. 충분합니다. 이전 작품을 몰라도 이 영화만으로 그의 스타일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처음 보는 분들이 감독 특유의 무표정 유머에 더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다 보고 나서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는 입문작으로도 적합합니다.

 

Q. 영화에서 칼레드의 망명 신청이 거부된 이유가 뭔가요?

A. 영화 속 핀란드 당국은 알레포를 '안전한 지역'으로 판정해 망명을 기각합니다. 이는 실제로 당시 유럽 일부 국가들이 분쟁 지역 출신 난민 신청을 처리하던 방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30만 명이 사망한 도시를 안전하다고 판단한 관료제의 모순을 감독은 직접적인 비판 없이 그대로 보여줍니다.

 

결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두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는 아이에게 "남의 일에 엮이지 마라"는 말을 두 번 다시 하지 않게 됐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곤경에 처한 낯선 사람을 보면 예전처럼 발길을 돌리지 않고 일단 다가가 보게 됐다는 것입니다.

거창한 기부나 봉사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빅스트룀이 칼레드에게 건넨 것은 결국 수프 한 그릇과 잠자리였습니다. 제가 출장길에 받은 것은 캔커피 하나와 우산 하나였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연대는 그 정도 크기에서도 충분히 시작됩니다. 오늘 이 영화를 찾아보시고 싶다면, 부담 없이 그 작은 시작을 먼저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3EYpTyStBX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