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조건'이 사랑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좋은 학교, 넉넉한 돈, 번듯한 직함. 그게 가족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요.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의 를 보고 나서야, 그 믿음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실제 할리우드 배우 조지 해밀턴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웃기고 따뜻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영화 줄거리: 남편 대신 자신을 찾은 여자1950년대 뉴욕. 최고의 재즈 밴드 리더이자 바람기 넘치는 남편을 결국 떠난 앤은, 두 아들 조지와 로비를 데리고 '새 남편'을 찾아 대륙 횡단 로드트립에 나섭니다. 그녀가 믿는 건 하나뿐입니다. 돈 많고 안정적인 남자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일반적으로 로드무비(Road Movie)라 하면 자..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 다치지 않게 막는 것이 맞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한 편이 그 믿음을 산산이 흔들어놓았습니다. 2019년 개봉한 로드무비 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22살 청년 잭이 요양원을 탈출해 레슬러의 꿈을 쫓는 이야기인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내내 떠올린 건 스크린 속 잭이 아니라, 놀이터 구석에서 무릎이 까진 채 보드를 타던 제 아이였습니다.장애 재현 방식: 일반적 통념과 이 영화의 실제는 달랐습니다영화에서 장애를 다루면 으레 두 가지 클리셰가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장애인 캐릭터를 불쌍하고 무력한 존재로 대상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지나치게 영웅화해 감동을 '소비'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도 솔직히 그 둘 중 하..
이와테현 오쓰치정 언덕 위에는 실제로 선이 연결되지 않은 전화기가 있습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설치된 이 전화기에 지금까지 1만 명 이상이 찾아와 세상을 떠난 가족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도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몇 년 전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한 번도 제대로 울지 못했던 그 밤들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연결되지 않은 선이 열어주는 것영화 속 소녀 하루는 쓰나미로 부모님과 동생을 한꺼번에 잃습니다. 그리고 히로시마의 이모 집에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죠. 하루가 단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는 설정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도 유예(grief postponement)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여기서 애도 유예란 상실의 충격이 너무 커서 감정을 처리하지..
솔직히 저는 '실패한 사람'이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다는 말을 오랫동안 믿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책임자로 이끌던 대형 프로젝트가 한순간에 엎어지기 전까지는요. 영화 엘리자베스타운은 바로 그 믿음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뒤집어 놓은 작품입니다.실패는 끝이 아니다, 진짜 통과의례다일반적으로 거대한 실패를 겪으면 "한동안 모든 걸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였습니다. 진짜 문제는 '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패를 바라보느냐'에 있었거든요.영화 속 주인공 드류는 야심 차게 기획한 신발이 역사상 최악의 흥행 참패작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사용하는 핵심 단어가 바로 피아스코(Fiasco)입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워두고 여행을 떠났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오히려 더 행복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독일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그 유쾌한 실패가 사실은 실패가 아니었다는 걸 새삼 확인했습니다. 수도사 세 명이 이탈리아로 걸어가는 이야기, 영화 신과 함께 가라입니다.300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수도사들의 로드무비저는 본래 여행을 갈 때면 시간 단위로 일정을 짜는 지독한 계획형 아빠입니다. 두 딸아이와 떠난 봄 여행에서도 역사박물관과 유적지 답사를 빽빽하게 넣어두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뒷좌석에서 "아빠, 저기 관람차 있어! 저기 가면 안 돼?"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계획에 없는 일이야"라고 선을 그었습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이 치료도 미루고 낡은 모터사이클을 몰고 서쪽으로 달려 나가는 그 첫 장면에서, 제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덜컹했기 때문입니다.정해진 출구를 지나쳐 본 적 있으신가요영화 속 국어 교사 벤은 말기암 진단을 받은 날, 병원 대신 중고 모터사이클 판매점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서쪽 끝 태평양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죠. 약혼녀 사만다의 눈물도, 가족의 만류도, 세상의 상식적인 압박도 모두 뒤로한 채.저도 비슷한 충동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몇 해 전 끝없는 실적 압박과 대출 이자, 아이들 교육비로 숨이 턱턱 막히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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