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좋은 치료'란 안전하고 효율적인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사람을 가두는지는, 아이가 창밖을 바라보며 "바람 좀 쐬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던 그날에야 처음 실감했습니다. 앤디 서키스 감독의 2017년 실화 영화 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하는 영화입니다. 전신마비 환자 로빈 카베나디시와 아내 다이애나의 이야기는, 삶이란 '숨만 쉬는 것(survive)'이 아니라 '세상을 느끼며 사는 것(live)'임을 뼈아프게 일깨웁니다.앤드류 가필드의 연기, 얼굴 하나로 절망과 희열을전신마비(Quadriplegia)를 연기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전신마비란 경추 손상 또는 특정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목 아래 사지 전체의 운동 기능과 감각이..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취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저는 조엘 슈마허 감독의 실화 영화 을 보며 그 질문 앞에 오래 멈춰 섰습니다. 1990년대 더블린의 마약 조직 실태를 파헤치다 총탄에 쓰러진 기자 베로니카 게린의 이야기는, 스크린 너머로 제 안의 무언가를 아프게 건드렸습니다.실화영화가 픽션보다 더 불편한 이유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막연히 '영웅 서사'를 기대했습니다. 불굴의 기자가 악당을 무너뜨리는 통쾌한 결말. 그런데 은 처음부터 그 기대를 비틀어 버립니다. 주인공은 더블린 빈민가 골목에서 마약 주사를 공유하는 아이들 앞에 서고, 취재원에게 뺨을 맞고, 마약 조직 두목 존 길리건(John Gilligan)에게 폭행을 당한 직후에도 다시 노트북을 켭니다.탐사보도(inves..
내 아이의 친구를 처음 본 순간, 저는 그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옷차림과 성적표를 먼저 봤습니다. 빈민촌 출신의 17살 흑인 소년 마이클 오어를 세상이 외면할 때 혼자 차 문을 열어준 리 앤 투오이처럼 행동했냐고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정반대였습니다.편견이라는 이름의 사각지대당장 눈앞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 상대방을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휴리스틱이란 복잡한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기 위해 뇌가 사용하는 인지 지름길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첫인상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습관'이 뇌에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마약 중독자 엄마와 강제로 헤어진 뒤 수십 개의 위탁 가정을 전전했던 마이클 오어는 그 휴..
2003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청년 제임스 로버트 케네디는 풋볼팀의 명예 감독이 되기까지 26년을 한 학교와 함께 삽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솔직히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건 그 이야기가 아니라 그동안 제가 살아온 방식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배경: 실화가 더 무거운 이유영화 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앤더슨의 실존 인물 제임스 로버트 케네디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그는 낡은 쇼핑 카트를 끌고 동네를 누비던 28세 청년으로, 지역 풋볼팀 T.L. 하나 고등학교와 인연을 맺은 뒤 수십 년간 팀의 일원으로 살아갑니다. 스포츠 사회학(Sports Sociology) 연구에서는 이런 사례를 '포용적..
마트 야간 알바를 하면서도 NFL 슈퍼볼 MVP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통계적으로 NFL 드래프트 지명을 받는 대학 선수는 전체의 1.6%에 불과합니다(출처: NCAA). 지명조차 받지 못한 선수가 리그 MVP를 거머쥔다는 건 그 확률을 한참 밑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실화입니다. 영화 은 바로 그 불가능한 수치를 실제로 뒤집은 커트 워너(Kurt Warner)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한때 아이의 꿈을 숫자로만 재단하던 제 과거가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마트 통조림 진열대가 만들어낸 NFL 쿼터백커트 워너의 이력은 NFL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커리어 궤적 중 하나로 꼽힙니다. 대학 시절 4년 내내 벤치 멤버로 머물렀고, 졸업 후엔 7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 안..
1966년, 농구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만년 무명 팀 텍사스 웨스턴 대학이 흑인 선수로만 구성된 스타팅 라인업으로 NCAA 결승 코트에 섰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다가 관중석에서 야유를 퍼붓던 1960년대 백인 관중과 제 자신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1966년, 그 코트가 놓인 시대적 배경미국에서 흑인 선수가 대학 농구 코트에 서는 것 자체가 논란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이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스포츠 현장에서는 인종 분리(racial segregation)의 관행이 뿌리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인종 분리란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의 공간과 기회를 법적·관습적으로 갈라놓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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