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환자가 아니라 인간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저는 백화점 신발 매장에서, 그리고 영화 한 편을 통해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1994년 작 영화 아버지의 황혼은 늙은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아들의 시선으로 따뜻하고도 날카롭게 짚어 냅니다. 보고 나면 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환자냐 인간이냐, 돌봄의 방식이 생사를 가른다영화의 핵심 축은 단순합니다. 어머니의 심장마비 소식에 고향 LA로 달려온 성공한 경영자 아들 존이, 평생 아내에게 의존해 살던 노인 아버지 제이크를 홀로 돌보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존의 접근법은 제가 아버지를 대하던 방식과 판박이였습니다. 투약 시간표를 붙이고, 동선을 제한하고, 위험하지 않은 것만 허용하는 방식. 철저히 신체 기능을 유지시키는 데 초점..
죽고 싶은 19살 소녀가 죽음을 배우러 들어간 곳에서, 오히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영화 는 바로 이 역설 하나로 관객의 가슴을 정확히 찌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침마다 습관처럼 뱉어왔던 불평 한 마디가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죽음의 공간에서 삶을 역설하다호스피스(Hospice)란 완치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에게 의학적 치료보다 통증 완화와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며 남은 삶의 질을 높이는 완화의료 시스템입니다. 쉽게 말해 '잘 죽을 수 있도록 돕는 곳'인데, 이 영화는 그 공간을 오히려 '가장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학교'로 뒤집어 보여줍니다.보육원 출신으로 세상의 온기를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주인공 수미는 "죽는 법을 알려달라"는 말을 내뱉으며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섭니다...
요르단 영화 역사에서 장편 극영화가 끊긴 공백기는 무려 50년이었습니다. 그 50년을 깨고 2007년 세상에 나온 작품이 바로 입니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50년이라는 단절이 오히려 이 영화의 투박함과 진정성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거짓말이 씨앗이 되는 순간일반적으로 거짓말은 신뢰를 무너뜨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암만 공항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아부 라에드가 버려진 기장 모자를 우연히 주워 쓰고 동네에 나타났을 때, 빈민가 아이들은 그를 진짜 파일럿으로 믿어버립니다. 그는 부정할 기회가 있었지만 입을 다뭅니다. 대신 에펠탑과 뉴욕 마천루, 드넓은 바다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여..
솔직히 저는 40대가 되면 불안이 좀 가라앉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식은땀이 쏟아지는 걸 느끼며, 저는 회사 대신 역 근처 내과로 도망쳤습니다. 수액 링거를 꽂고 누워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만들어낸 공포에 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는 것을.성공 강박이라는 이름의 함정영화 이츠 카인드 오브 어 퍼니 스토리의 주인공 크레이그는 16살 소년입니다. 명문 고등학교, 완벽한 대학, 성공적인 취업으로 이어지는 '성공 트랙'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인생이 끝장난다는 압박감을 안고 삽니다. 결국 자살 충동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정신과 응급실을 찾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여기서 주목할 것은 크레이그의 우울에 딱히 거..
솔직히 저는 '실패한 사람'이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다는 말을 오랫동안 믿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책임자로 이끌던 대형 프로젝트가 한순간에 엎어지기 전까지는요. 영화 엘리자베스타운은 바로 그 믿음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뒤집어 놓은 작품입니다.실패는 끝이 아니다, 진짜 통과의례다일반적으로 거대한 실패를 겪으면 "한동안 모든 걸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였습니다. 진짜 문제는 '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패를 바라보느냐'에 있었거든요.영화 속 주인공 드류는 야심 차게 기획한 신발이 역사상 최악의 흥행 참패작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사용하는 핵심 단어가 바로 피아스코(Fiasco)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잔잔한 가족 영화겠거니' 하고 틀었다가, 영화가 끝난 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04년 개봉한 영국 영화 디어 프랭키는 청각 장애를 가진 아홉 살 소년과 그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몇 해 전 제 딸아이와의 기억을 꺼내 들고 말았는데, 그 이야기도 함께 풀어보겠습니다.이타적 거짓말: 상처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는가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확신이 조금 흔들렸습니다.영화 속 엄마 리지는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아들 프랭키를 데리고 도망쳐 살아갑니다. 아버지의 부재를 설명하기 위해 리지가 선택한 방법은 "아빠는 전 세계를 항해하는 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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