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시작하는 사람을 보면, 솔직히 처음엔 답답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그 결말이 생각보다 자주 우리 예상을 비껴간다는 것입니다. 영화 '사막에서 연어낚시'는 그 불편한 진실을 잔잔하게, 그러나 꽤 세게 찌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작년 여름 베란다에서 벌였던 한 소동이 떠올라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과학자의 확신과 왕자의 믿음 사이영국 농림부 소속 수산학자 알프레드 존스 박사는 예멘 사막에서 연어 낚시를 하겠다는 셰이크 무함마드의 프로젝트를 처음 접하자마자 단칼에 거절합니다. 그의 반응은 충분히 납득할 만했습니다. 어류학(魚類學), 즉 어류의 생태와 서식 환경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의 관점에서 보면, 연어는 수온 섭씨 6~14도의 냉수성 어종입니다. 여기..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청색증 수술의 역사'를 백인 의사 혼자 써 내려갔다고 막연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 안에 꽤 오래 숨어 있던 부끄러운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재작년 어머니 칠순 잔치에서 저 혼자 박수를 독식했던 그 밤 이야기입니다.지워진 이름, 지워지지 않은 공헌1930년대 미국 내슈빌. 흑인 청년 비비언 토마스는 목수 출신으로 밴더빌트 대학 산하 실험실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천부적인 손재주와 관찰력을 알아본 외과의사 알프레드 블레이락은 그를 단순 잡역부가 아닌 실험 조수로 곁에 두기 시작했습니다.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시아노틱 하트 디지즈(Cyanotic Heart Disease), 즉 선천성 청색증 심장 질환을 치료하는 수술법의..
아버지는 빈집털이범, 어머니는 사기꾼, 장남은 문서 위조 전문가. 영화 한 편이 저한테 던진 첫 질문은 "그래서 이 집이 가족이 맞냐"였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저는 오히려 제 자신한테 그 질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정의를 남들의 시선으로 검증하려 했던 제 옛날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범죄자 가족이 보여준 가족의 본질일반적으로 가족이란 혈연(血緣), 즉 생물학적 혈통으로 이어진 관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혈연이란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처럼 피를 나눈 법적·생물학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건, 그 정의가 생각보다 훨씬 허술하다는 것이었습니다.영화 속 카즈히코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카즈히코는 과거 도둑..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 예약이 취소된 그날 저녁, 거실 바닥에 둘러앉아 엉망진창 주먹밥을 뭉치던 제 가족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으니까요. 영화 한 편이 그 기억을 다시 꺼내주었습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천천히 익어가는 것들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영화, 카모메 식당입니다.텅 빈 식당이 왜 문을 닫지 않았을까저도 처음엔 이 영화의 설정이 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픈한 지 한 달이 넘도록 손님이 한 명도 없는데, 주인공 사치에는 왜 불안해하지 않는 걸까. 보통은 이쯤 되면 메뉴를 바꾸거나 SNS 마케팅을 시작하거나, 아니면 그냥 문을 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정상 아닐까요.그런데 사치에는 다릅니다. 그녀는 매일 쌀을 씻고 물을 맞추고 밥이 완성되기를 기다립니다. 이 장면이..
이와테현 오쓰치정 언덕 위에는 실제로 선이 연결되지 않은 전화기가 있습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설치된 이 전화기에 지금까지 1만 명 이상이 찾아와 세상을 떠난 가족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도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몇 년 전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한 번도 제대로 울지 못했던 그 밤들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연결되지 않은 선이 열어주는 것영화 속 소녀 하루는 쓰나미로 부모님과 동생을 한꺼번에 잃습니다. 그리고 히로시마의 이모 집에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죠. 하루가 단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는 설정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도 유예(grief postponement)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여기서 애도 유예란 상실의 충격이 너무 커서 감정을 처리하지..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진짜 쉬려면 혼자여야 한다"라고 믿었습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피로해지고, 관계가 많을수록 상처도 많아진다고요. 그런데 영화 한 편이 그 믿음을 조용히 무너뜨렸습니다. 2003년 작 인디 영화 스테이션 에이전트는, 사람에게 지쳐 철저한 고립을 선택한 한 남자가 어떻게 다시 세상 쪽으로 걸어 나오는지를 다룹니다.사람에게 지쳐 문을 닫아건 이들에게 찾아오는 번아웃저는 직장 내 인간관계와 쏟아지는 업무에 극심한 피로를 느끼던 어느 주말, 베란다 구석에서 먼지 쌓인 1인용 팝업 텐트를 꺼내 그 안에 들어가 지퍼를 잠가버렸습니다. "아무도 말 시키지 마. 완벽한 고립이 필요해." 그때 제 심정이 딱 영화 속 핀바 같았습니다.핀바는 왜소증(Dwarfism)을 앓고 있습니다. 왜소증이란 유전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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