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섯 명이 세상 어떤 가족보다 따뜻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을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40대 가장으로서, 등본에 이름 나란히 올려놓은 것만으로 '진짜 가족'이라 믿어온 제 안이함이 그대로 들켜버린 기분이었습니다.혈연정상가족이라는 신화, 그리고 균열한국 사회에서 '정상가족(Normal Family)'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강고합니다. 정상가족이란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모델을 말합니다. 이 틀 바깥에 있는 관계는 종종 '비정상'으로 분류되거나, 적어도 설명이 필요한 예외 취급을 받습니다.실제로 2023년 여성가족부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10명 중 약 7명은 여전히 "가족이란..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 사실은 가족을 가장 멀리하는 핑계일 수 있습니다. 저는 몇 해 전 임원 트랙 제안을 받고 그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사람입니다. 영화 패밀리 맨은 바로 그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지금 당신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가장 조용하고 가장 서늘하게 말해줍니다.월스트리트의 성공이 놓친 것: 기회비용의 진짜 의미영화의 주인공 잭 캠벨은 성공의 교과서 같은 인물입니다. 펜트하우스, 페라리, 명품 슈트. 13년 전 사랑하는 연인 케이트를 남겨두고 런던 유학을 택한 결과로 쌓아 올린 것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크리스마스 아침, 그는 완전히 다른 삶 속에서 눈을 뜹니다. 뉴저지의 작은 집, 두 아이, 타이어 가게 외판원의 삶. 영화는 이 설정 하나로 경제학의 핵심 개념 하나를 정면으로 건..
1994년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 아이오와주의 73세 노인이 낡은 잔디깎이 트랙터를 몰고 390km를 6주에 걸쳐 달려 10년 넘게 등진 형을 만나러 갔습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99년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그 실화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 한쪽이 바늘로 찔리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과거의 어쭙잖은 자존심 때문에 매몰차게 끊어버린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느린 여정이 말하는 것엘빈 스트레이트는 시력 저하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습니다. 형 라일이 뇌졸중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버스도 없고 차를 부탁할 형편도 안 됐습니다. 그가 선택한 교통수단은 30년 된 낡은 잔디깎이 트랙터였고, 그 속도는 시속 8km에 불과했습니다.저는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성장 영화라고 하면 대개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스스로 강해지는 전형적인 서사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 공식을 비틀어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사실인가"보다 "무엇을 믿기로 선택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삶이 있다는 것,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무게를 제대로 느꼈습니다.버려진 소년과 두 노인, 예상 밖의 성장저도 처음엔 이 영화를 그냥 가볍고 따뜻한 가족물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화면에 펼쳐지는 장면들은 꽤 낯설었습니다. 엄마에게 텍사스 시골 농장에 떠밀려 온 14살 소년 월터, 그리고 외판원에게 총질을 해대고 아프리카에서 중고 사자를 배달시키는 두 할아버지 허브와 가스. 이 조합이 성장 서사의 핵심 구조를 이룰 거라고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좋은 부모'란 스스로 충분히 완성된 사람만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두 딸아이를 키우면서도 그 믿음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고, 그래서 더 자주 흔들렸습니다. 영화 파머는 그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하고 묵직하게 부숴버린 작품입니다.범죄자와 방치된 소년, 두 약자가 만나는 배경파머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12년 만에 출소한 전직 쿼터백 에디 파머의 이야기입니다. 쿼터백(Quarterback)이란 미식축구에서 공격을 지휘하는 핵심 포지션으로, 팀의 두뇌이자 얼굴에 해당합니다. 파머는 한때 그 자리에서 빛났던 인물이지만, 출소 후 그에게 허락된 자리는 학교 청소부뿐입니다.그런 파머 앞에 샘이 나타납니다. 마약 중독 상태의 엄마에게 방치된 채, 공주 드레스를 즐겨 ..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뇌 분리 수술에 성공한 신경외과 의사가 사실 어린 시절 '낙제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1987년 독일에서 70명의 의료진과 22시간에 걸쳐 진행된 그 역사적인 수술의 주인공, 벤 카슨 박사의 실화를 담은 를 보며 저는 제20대 시절 오만함으로 망가뜨렸던 제 인생의 '원더보이'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능에 취해 멘토의 조언을 무시하고 헛발질했던 그 시절 말이죠.낙제생에서 천재 외과의까지, 벤 카슨의 역전 드라마영화는 1961년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시작됩니다. 문맹이었던 어머니 소냐 카슨이 두 아들을 혼자 키우며 "TV 끄고 책 읽기" 교육법을 강제했던 이야기는, 교육학에서 말하는 '리터러시(literacy) 기반 학습법'의 실제 사례였습니다. 여기서 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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